2009년 07월 07일 화요일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사도행전 18:2하-3) 사도 바울은 선교하면서 언제나 일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육체노동을 자주 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오늘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바울의 육체노동은 당시 헬라 문화권에서 활동하며 가르치던 철학자들과 비교하면 대단히 충격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당시 헬라 철학자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부유한 귀족들의 후원을 받으면서 학문 활동을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런 소수의 독지가는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들의 헌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방법은 악사들처럼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강의를 하면서 일종의 ‘구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지도 못하는 철학자들이 택하는 방법이 바로 자기 손으로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고대 헬라인들에게 있어서 육체노동은 ‘저주’ 그 자체였습니다. BC 8-9세기경의 호머는 인간을 미워한 신이 앙심을 품고 인간을 고생시키는 것이 일이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이란 가능하면 노예들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득을 얻기 위해 하는 일은 그 자체로 저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에 대한 헬라철학의 편견으로 볼 때 바울은 당시 사람들의 비난을 무릅쓰면서도 장막을 만드는 일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가르치는 자로서 그들의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굳이 일을 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일은 그의 전도 대상자들에게 비난받아 마음을 닫을 수도 있는 우려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헬라철학자들이 가지고 있던 일에 대한 편견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느낍니다. 오늘 제가 하는 일이 사도 바울이 사수해낸 귀한 일임을 기억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게 하옵소서. 원용일 목사
아멘!! 주여 제 영혼을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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