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생명의 말씀

삶에 지친 슬픈 구도자들을 사랑하라!

아진(서울) 2007. 7. 6. 08:31

2007년 7월 6일 금요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깐느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때문에(?) 영화 <밀양>을 보러 극장에 갔던 사람들의 반응이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크리스천들은 기독교를 왜곡되고 작위적으로 그렸다고 불만, 안 믿는 사람들도 ‘무슨 종교 영화야?, 교회 장면뿐야.’라고 쏘아붙입니다. 함께 영화 보러 갔던 아내도 감독의 의도가 순수해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이 영화를 좀 예쁘게 봐주려는 저와 언쟁을 벌였습니다. 여러 각도로 영화를 볼 수 있으나 저는 이 영화가 유사 신정론(神正論, pseudo-theodicy)에 관한 종교 영화(부담스러우면 求道에 관한 영화)라고 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신이라면 어떻게 내 아들이 그렇게 죽도록 내버려두실 수가 있어요?” 장로 부인인 약국 여의사의 전도 권유에 똑 부러지게 대꾸하는 신애의 말이 바로 이 영화에서 말하려는 주제가 아닐까요? 신애는 아들 죽인 학원장을 용서하러 교도소에 갔다가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점잖게 간증하는 그 남자를 보고 회심했던 기독교 모드에서 돌변했습니다. 그 이후 자주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께 뭔가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고 있느냐고, 자기를! 정말 보고 있느냐고, 여러 차례 절망적으로 질문하고 하소연합니다. 값싼 구원, 풋내기 신자의 오만한 자기사랑이라기보다는 그 모든 것이 구원의 과정이라고 저는 보았습니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신애가 미장원에서 자기 머리를 만지는 미용사가 살인자의 딸임을 알았을 때 그래도 자식은 불쌍해서 감격적으로 용서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난데없이 자리를 박차고 신애가 뛰쳐나가고 하늘을 향해 말합니다. “왜 오늘, 하필 오늘 여기에….”신애는 신애(神愛)를 수긍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인간적이고 현실적입니까? 그리고 나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 슬픈 여인에게만 그렇게 어려운 숙제가 아니라, 어떤 인생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변주(變奏)를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희망이 있습니다. 푼수 같으나 사랑 깊은 남자(종찬)가 잡아주는 거울을 보고 덜 자른 자기 머리카락을 스스로 자르며 신애(信愛?)는 다시 출발하려는 소망을 보여줍니다. 잘린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강아지풀 그림자가 하늘거리는 그 수채 구멍에도 햇볕이 들었습니다. 은밀한 햇볕(密陽, Se! cret Sunshine). 교회는 이런 안타까운 사람들의 구도 과정을 보살! 펴주는 ? 棘瑛潔杵?합니다! 밀양은 사랑입니다. 세상의 안타까운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따뜻한 햇볕입니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일하고 농담하고, 유괴하고, 유혹하며, 외로워하고, 노래하고, 술 마시고, 자살하기도 합니다. 이런 삶의 현장 속의 우리 동료들을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치유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원용일 목사

 

- 힘든 삶중에서 나에게 주는 말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