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생명의 말씀

탐욕으로 자초한 화를 합리화시키지 말라!

아진(서울) 2007. 3. 7. 08:41

2007년 3월 7일 수요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창세기 27:45)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애매한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지만 때로 우리의 탐욕과 죄악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이 둘을 잘 구분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지만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 위기의 원인을 잘 생각하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이삭이 장자 에서를 축복하려고 할 때 리브가는 그 복을 가로채 야곱이 축복을 받도록 계획합니다. 리브가는 큰 아들 에서의 분노와 원한에 직면해 야곱이 죽을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외가로 보내면서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라고 신세 한탄을 합니다. 리브가의 이 한탄 속에는 그녀의 고민이 담겨 있지만, 탐욕도 반영되어 있으며 단절된 부부 관계의 안타까운 모습도 들어 있습니다.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이미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한 예언을 들었던 리브가는(창25:23) 그 사실을 남편 이삭과 공유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거짓말과 거짓 행동을 통해서 눈이 어두운 남편의 축복을 가로채야만 했을까요?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바로 욕심이 앞섰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기도하는 믿음의 가정이었고 남편 이삭이 아내를 아끼며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랑이 식고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얼마든지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믿는 사람의 기본적 윤리는 무시하고 엉뚱한 짓을 저질러놓고는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라고 한탄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도망가 20년이 지나 돌아왔을 때 이미 리브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국 리브가는 아들을 다시는 보지 못한 것이고 그 많은 손자 손녀들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순위를 두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말씀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하겠습니다. 편법을 쓰지 않겠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원용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