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이세대 이슈

눈이 아니라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진(서울) 2006. 6. 8. 14:30
[현장] 시각장애인 집회가 10일째 열리는 마포대교
    김철식(chincu1125) 기자   
▲ 여성 시각장애인이 생존권 보장을 외치고 있다.
ⓒ 김철식
뿌옇고 흐린 초여름 하늘만큼이나 마포대교에 모인 시각장애인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마포대교 아래에서는 시각장애인들에게만 안마사자격증을 주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항의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집회가 열흘 째 계속되고 있다.

7일 오후 마포대교 난간에서는 시각장애인 5명이 아슬아슬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 한강 둔치에서는 100여명의 시각장애인들이 지난 6월 4일 투신자살한 시각장애인 손모씨를 추모하는 집회를 열고 있었다.

집회에 모인 시각장애인들은 생활을 잠시 보류한 채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었다. 기타소리에 따라 노래를 함께 부르던 시각장애인들은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절규하듯이 구호를 외쳤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대한안마사협회 회원인 최예지씨로부터 시각장애인의 현실을 들어보았다.

- 시각장애인들의 직업은 주로 어떻게 됩니까?
"시각장애인들은 직업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안마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헌재의 판결에 따라 안마사 자격을 일반인들에게도 허용하게 되면 시각장애인들이 입을 타격이 너무 큽니다. 그 때문에 모든 일을 포기한 채 집회를 하고 있는 겁니다."

-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은 없습니까?
"국민 여러분께서는 모든 시각장애인들에게 정부보조금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장애 등급이 매겨진 후 보조금이 나오기 때문에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도 많습니다."

- 안마사로 일하면 어느 정도의 생활이 가능합니까.
"요즘은 불법 스포츠마사지와 안마시술 등으로 인해 손님의 발길이 크게 줄어든 상태입니다. 하루 번 돈으로 다음날을 영위하는 수준밖에 안 되는데 그것마저 빼앗아 버린다면 시각장애인들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답답합니다."

▲ 학생과 할머니까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 김철식
부산맹인학교 학생들이 집회장소를 찾았다. 부산맹인학교 학생 대표인 정윤학군에게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 부산에서 서울까지 어떻게 올라오게 되었나요?
"지금 이 시간은 학교에서 수업을 받아야 할 시간입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자격증을 허용하는 건 위헌이라는 판결을 듣고는 공부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의도에서 열릴 대국민집회에 참석하고자 수업도 중지한 채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집회가 취소되어서 돌아가려고 했는데 마포대교에서 소규모 시각장애인집회가 열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잠깐 찾아왔습니다."

- 맹인학교에서는 어떤 수업을 합니까?
"한방술, 한방침, 뜸, 안마 등을 3년 동안 공부합니다. 3년이 지난 후에는 안마사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합니다. 하지만 안마·마사지 시장에서는 몇 주 과정만 거치면 마사지자격증을 딸 수 있습니다. 맹인학교에서 무려 3년 이상의 땀을 흘려 얻을 수 있는 것을 일반인들은 몇 주 과정으로 마사지자격증을 따고 있습니다. 그것도 억울한 일인데 이제는 안마사자격을 맹인들에게만 허용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판결까지 내린다면 우리 맹인 학우들은 공부할 이유도, 미래도 없습니다."

- 기본권 침해라는 판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일반 몸이 불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본권은 정말 중요한 권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사라는 영역은 기본권인 동시에 생존권입니다. 기본권과 생존권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생존권이 보장되어야 살아갈 수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집회에 계속 참석할 생각입니까?
"금요일(9일)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전국학생집회에도 참여할 생각입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 어린 시각장애인의 꿈과 희망을 위해서 관심 갖고 도와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 아슬아슬한 고공농성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마포대교 난간.
ⓒ 김철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