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정치와 사회

여당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아진(서울) 2006. 5. 31. 23:07
 [오마이뉴스 2006-05-31 16:07]    

[오마이뉴스 유창선 기자] 이번처럼 싱거운 선거가 또 있을까.

아직 선거가 끝나지도 않았건만, 사람들의 관심은 개표 결과보다 열린우리당의 소용돌이로 향해 있다. 광역단체장 선거 가운데 한두 곳의 승부가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일단 열린우리당의 대패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냥 패배가 아니다. 상황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했다. 선거 초반에 형성된 판세는 요지부동, 한번도 출렁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민심의 거부는 그만큼 단단하게 굳어져 있었다. 한나라당의 매관매직 공천비리도, 성추행도 모두 덮어버리는 쓰나미였다.

바로 2년 전 17대 총선에서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과반수 정당이 되었던 열린우리당이었다. 그 때 한나라당은 전멸의 위기 속에서 견제 세력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읍소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반대가 되었다. 열린우리당이 견제의 필요성을 호소하며 읍소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 2년 동안 열린우리당이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이렇게까지 민심에게 거부당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소모적 논란, 고집과 독선, 자화자찬

▲ 25일 '지방선거에서 야당의 싹쓸이를 막아달라'는 대국민 호소문을 채택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등이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지만 가장 큰 책임은 노 대통령에게 있다. ⓒ2006 오마이뉴스 이종호

개표가 끝나고 나면 열린우리당 안에서는 책임론이 대두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갈래는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청와대 책임론도 있을 것이고, 정동영 의장을 비롯한 당권파 책임론도 있을 것이다. 당이 잘못했느냐 청와대가 잘못했느냐를 둘러싼 공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시되는 집권여당의 대패는,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조차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민의는 청와대와 여당을 망라한 집권세력 전체에 대한 총체적 거부이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에게서 등돌린 민심에게는 청와대나 여당이나 모두 한 묶음일 뿐이다. 집권세력에 대한 민심의 거부는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3년 3개월에 걸친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결과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무능력과 독선으로 비쳐진 노무현식 리더십에 대한 거부와 염증의 표현이다. 열린우리당 역시 제대로 한 일이라고는 찾기 어려울 정도의 무능력을 질타받아왔지만, 결국 문제의 근원은 집권세력의 최고 지도자인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로 귀착된다.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의 끊임없는 생산, 좀처럼 고집을 꺾을 줄 모르는 독선,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계속되는 정권내부의 자화자찬…. 이 모든 것들이 쌓이고 쌓여 민심은 등을 돌리고 만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탄핵으로부터 지켜줬고 과반수 여당을 만들어준 국민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의 미련을 접고 등을 돌린 것이다.

청와대는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지방선거과 청와대가 무슨 상관이냐고. 선거는 당이 치른 것이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당의 문제이지 청와대가 직접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는 식의 생각을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문제는 계속 꼬이게 되어 있다. 노 대통령을 필두로 한 청와대는 이번 선거에서 터져나온 민심의 실체를 제대로 읽어야만 한다. 민심의 불만이 단지 열린우리당이나 정동영 의장, 혹은 김근태 최고위원을 향한 것일 리 없다면 말이다. 이번 선거 결과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사람은 강금실도 아니요, 진대제도 아니요,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국민 앞에 무릎꿇는 시늉이라도 해야 옳다. 개혁세력 전체에 대한 불신... 노 대통령은 책임을 느껴야 한다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그의 가장 큰 잘못은 개혁세력이 곧 무능력하고 독선적인 세력인 것으로 국민에게 인식되게 했다는 데 있다. 그 결과는 단지 한 정부의 실패를 넘어 심각한 역사적 후과를 낳고 있다. 노무현식 리더십에 대한 거부는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의 탄생을 지원했던 개혁세력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이번 선거에서 민심의 심판을 받게 된 것도 그 표현의 하나다.

그 결과 5·31 선거 이후의 우리 정치사회는 급격히 보수화의 물결을 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그 같은 분위기 속에서 차기 대선에서 보수적인 정권이 탄생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집권세력에게 다시는 정권을 맡기고 싶지 않은 국민적 염증은 차기 대선에서 개혁적인 정권의 탄생을 근본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양극화의 해소, 구시대적 법률·제도의 정비를 비롯한 실질적인 개혁들이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한반도의 정세는 어디로 갈 지 향후 몇 년간 지극히 불투명한 상황이 예고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차기 정권의 향배는 우리 사회의 진로를 좌우할 수 있는, 아직은 엄중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민심은 천심, 야속하다고 원망하지 말라

노 대통령은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정국 상황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국민에 대한 송구스러움을 바탕에 깔고 모든 국정에 임해야 한다. 그러한 자세가 전제되어야 비로소 그 다음의 이야기들이 가능하다.

열린우리당은 창당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새 당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에게서 정치적으로 탄핵당한 마당에, 기득권에 연연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구성원 모두가 기득권을 버리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여당을 만들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다. 민심이 이유없이 등돌린 것은 아니다. 민심을 야속하다 원망하지 말고 정말로 겸허히 받아들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31일 밤 개표결과를 보며 집권세력이 다져야 할 마음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