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정치와 사회

[경제]‘버블 세븐’만 악의 축인가

아진(서울) 2006. 6. 6. 21:12
 뉴스메이커 677호

미친 집값 논란에 정책신뢰도만 ‘바닥’… 원가공개·후분양제로 ‘악순환’ 끊어야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잇따라 부동산 시장의 버블 붕괴를 경고하면서 버블 논쟁이 뜨겁다. 사진은 ‘버블 세븐’ 중 하나인 분당. 

최근 들어 부동산 거품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지난 5월 15일 청와대가 서울 강남 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와 목동·분당·평촌·용인을 ‘버블 세븐’으로 지목한 것을 시작으로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잇따라 부동산 시장의 버블(거품) 붕괴를 경고하고 나서면서 부동산 시장은 물론 정치권, 금융계, 일반 기업까지 버블 논쟁이 뜨겁다. 내집 하나 갖고 있는 중산층이나 내집을 장만하려는 수요자들도 지금 집을 사거나 더 넓은 곳으로 옮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린다.

지금 문제는 버블의 유무나 버블논쟁 자체가 아니다. 과연 현재 정부가 집값 폭등을 억제할 수 있는지, 정부가 지금까지 거품을 못 잡은 것인지 안 잡은 것인지가 ‘버블 논쟁’의 핵심이다. 미친 듯 오르는 집값 정부 분석자료에 따르면 강남집값 상승률이 21.4%로 강남 이외 서울 집값 상승률(4.6%)보다 4.6배가 높다. 특히 아파트 상승률은 강남이 52.2%로 비강남 서울의 상승률(13.7%)보다 4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수치는 어쩌면 한가해 보이기까지 한다. 자고 일어나면 강남의 무슨 아파트는 1억이 올랐다, 어디어디는 집값이 몇 달 만에 수억씩 올랐다는 뉴스에 분통을 터뜨리는 서민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버블 세븐 중 하나인 경기 평촌의 54평형 아파트는 올 초 6억5000만 원이던 집값이 9억5000만 원까지 올랐다. 평촌에 지하철이 더 생긴다거나 대규모 공원이 조성된다는 등의 호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잠잠하던 목동도 몇 달 만에 수억씩 오른 곳이 부지기수다.

목동 10단지에 20평형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회사원 정모씨(42)는 “집을 사던 2000년만 하더라도 20평형과 27평형의 집값차가 700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2억5000만 원”이라면서 “내집도 올랐지만 전세로 살지 않는 이상 넓은 집에서 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집값에 거품이 어느 정도 있느냐를 판단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소위 부동산 전문가나 학자들도 저마다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 의견만 난무할 뿐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집값이 너무 올랐다는 것이다. 특히 평당 6000만 원 안팎의 강남 아파트 값은 우리나라 소득규모를 감안할 때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아파트 값이 정상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대한주택공사 산하 주택도시연구원 지규현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근로자가구의 월 평균소득(322만 원)을 기준으로 대출을 감안해 구입할 수 있는 적정 주택구입 가격은 3억3661만 원이다. 시세의 60~80%에 불과한 정부의 공시가격으로도 6억이 넘는 강남의 30평형대 아파트를 사려면 월 700만 원 정도를 벌어야 가능하다. 시세대로 집을 사려면 1000만 원 소득자라도 부족할 판이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로또에 당첨되지 않으면 월급쟁이는 내집마련의 꿈을 접어야 할 상황이고 자녀들이 성장해 좀더 넓은 평수로 가고 싶어도 그냥 ‘비좁은’ 집에서 살아야 한다. 평형차는 30평형대와 40평형대는 전용면적으로 보면 5평도 차이가 나지만 집값은 3억~5억 원씩 차이가 나기 일쑤기 때문이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강남 3구의 아파트 값은 과거 버블이 꺼지기 직전의 일본과 같은 수준” 이라고 주장했다. 왼쪽은 부동산 버블을 걱정할 때가 됐다고 주장한 정문수 경제보좌관.  투기와 담합이 주된 원인 이런 상황에 지금의 집값이 버블인지 아닌지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특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은 상당수의 집값 상승이 시장원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뱅크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집값 상승 지역의 매매가와 매도호가 편차가 1년 만에 최고 9배나 커졌다. 매도호가를 중심으로 가격이 부풀려졌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강남에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부르는 가격 때문에 집값이 올랐다는 의미다. 실제로 서울 송파구 오륜동 올림픽선수기자촌 50평형 아파트의 지난해 매매가는 12억 원으로 매도호가와 차이가 없다. 올해 매도호가는 15억1000만 원까지 올랐지만 실제 거래가는 13억2500만 원이다.

경기 분당 정자동 파크뷰 63평형은 지난해 매매가가 15억5000만 원으로 매도호가와 편차가 5000만 원이지만 올해는 편차가 2억7500만 원(매도호가 22억5000만 원-매매가 19억7500만 원)으로 커졌다. 경기 평촌 꿈건영 5차 38평형의 경우 지난해 1000만 원에 불과하던 가격편차는 올해 9000만 원으로 벌어졌다.

호가 상승에 의한 집값 불안 내지 시장교란의 대표적인 예가 최근 논란이 된 부녀회의 집값 담합이다. 시세를 낮게 매긴 중개업소에 조직적으로 항의하거나 아파트를 싸게 팔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제 고전이 됐다. 아파트 단지에 얼마 이하로는 팔지 말라는 안내문을 붙이거나 안내방송도 서슴지 않는다. 인터넷 동호회 활동 등을 통해 호가를 높이기도 한다. 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이를 분석해 봐도 집값 상승이 비정상적임을 알 수 있다. 국민은행이 자체 부동산통계를 분석한 결과 ‘버블 세븐’ 지역의 아파트 매매가는 전세가보다 평균 7.4배 높았다. 특히 서울 강남구 아파트는 연평균 12.5%가 오른 데 반해 전세가격은 0.6% 상승에 그쳐 그 차이가 21배에 달했다. 송파구는 13.7% 대 1.4%로 매매가 상승률이 9.8배 높았고 양천구 9.62배, 서초구 6.0배였다. 주거가치나 생활편의성보다는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투기심리로 가격이 올랐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전세가는 실제 주거가치를 반영하지만 매매가는 주거가치보다는 미래가치나 재산적인 가치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국지적 상승’→ ‘버블 세븐’ 이러한 비정상적인 집값 상승을 보면 부동산 버블에 대한 우려는 당연한 것이다. 강남사람조차 집값이 너무 오르는 걸 걱정하기에 이른 상황이다. 그렇다고 버블 논쟁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판교 신도시 주공아파트 모델하우스.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후분양제의 조속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거품 논쟁의 시초가 됐던 ‘버블 세븐’이란 말은 정부가 부동산 거품이 심하게 낀 지역을 선정해 만든 신조어다. 즉 거품 붕괴의 초점은 전국이 아니라 거품의 핵심지역인 ‘강남3구’를 비롯한 용인, 분당 등이라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지금까지 주장해온 ‘국지적 상승’이란 단어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국 집값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강남 등 일부 호재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국지적인 불안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말은 정부의 일상적인 레토릭이다.

그러나 과연 집값 불안이 일부에 국한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국민은행 주택가격 조사통계(2004년 1월~2006년 3월)에 따르면 버블세븐 중 아파트값 상승률이 가장 높은 곳은 서울 서초구로 34.4%에 달하고 분당(28.8%), 송파(26.9%), 용인(25.9%), 평촌(24.7%), 강남(24.5%), 목동(20.4%) 순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버블세븐보다 아파트값 상승률이 높은 곳도 적지 않다. 과천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32.8%였으며, 용산(27.1%), 성동(21.3%) 등도 상승률이 높다. 또 버블 논쟁 이후 강동·광진·동작구와 여의도 등 서울시내 주요지역과 일산·중동·산본 등의 집값도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였다. 정부의 생각과 달리 버블은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여기에 혁신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와 같은 각종 개발정책 등으로 인해 땅값·집값이 오른 곳은 전국적으로 산재한다. 정부의 상황인식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결국 거품제거를 위한 처방이 잘못되거나 미미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경실련 김헌동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은 “정부는 집값 급등이 국지적인 현상이라면서 부동산문제를 축소해왔다”면서 “잘못된 부동산 정보로 대통령과 국민을 속여온 관료들이 집값 안정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정체도 분명치 않은 버블 세븐 지역 주민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거품논란, 신뢰가 문제다 거품 논란은 최근 정부 당국자의 연이은 발언으로 더욱 커지고 있다. “부동산 거품에 대한 진단이 여러 연구기관에서 나오고 있다. 이제 부동산 거품을 걱정할 때가 됐다”(5월 4일, 정문수 대통령 경제보좌관), “올 연말 강남 지역 고가 아파트의 갑작스러운 가격 폭락이 우려된다”(윤호중 열린우리당 부동산대책기획단 간사), “서울 변두리, 지방에서는 부동산 버블이 이미 꺼지고 있다”(5월 16일,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 “부동산 시장이 버블의 저변에 와 있다”(5월 17일,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보), “부동산 가격은 지금보다 20~30% 내려갈 것”(5월 17일, 김용민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서울 강남 3구의 아파트 값은 과거 버블이 꺼지기 직전의 일본과 같은 수준”(5월 18일, 한덕수 경제부총리), “세금제도는 노무현 정권이 끝나도 안 바뀐다”(5월 19일, 노무현 대통령),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우선 주택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을 수 있고 금융기관은 대출 손실을 볼 수 있다”(5월 25일, 김석동 차관보)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를 두고 보수언론과 건설업계 등에서는 ‘거품 발언이 거품’이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정부가 경제위기를 부를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을 연일 쏟아내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정상 궤도를 이탈했을 경우 정부는 적절한 방식으로 경고신호를 보낼 수 있고 보내야 한다. 그것이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의 책무이기도 하다. 부동산문제가 단순히 경제문제가 아닌 빈부문제, 양극화 등 사회·정치적인 문제임을 감안하면 정부의 구두개입으로라도 효과가 있으면 다행이다. 문제는 정부 당국자의 거침없는 부동산 발언이 빈말이 되지 않도록 정책신뢰도를 높였는지 자문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의 분위기는 종합부동산세 부과 등 보유세 증가, 양도세 실거래가 부과 및 2주택자 양도세 중과, 실거래가 등기부 등재 및 공개, 재건축개발이익 환수, 기반시설부담금 공공택지 아파트의 원가연동제 등의 조치로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책은 모두 내놨고 이들이 시행만 되면 집값은 곧 잡힐 것이라고 과신하고 있다. 집값이 안정되지도 않았는데 8·31대책을 만든 정부 관료들이 줄줄이 훈장을 받은 게 이를 보여준다. 참여정부는 10·29대책, 8·31대책 등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들을 여러 차례 내놓았지만 아직까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땜질식, 뒷북식 대책을 찔끔찔끔 내놓으면서 시장의 면역력만 키워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지금은 정부의 조치가 시장에 먹혀들 수 있도록 그 어느 때보다 정책의 신뢰도와 효율성을 높여야 할 시기란 점이다.

국내 최고가 아파트인 삼성동 아이파크. 

치밀한 후속조치 준비해야 정부의 보유세 강화 방안이 7월 재산세 고지분부터 가시화된다. 재산세(주택분)는 7월과 9월 50%씩 나온다. 토지분은 9월, 종합부동산세는 12월 각각 부과된다. 막연하게 세금이 늘어난다고만 알고 있던 부동산 보유자들이 고지서를 받게 되면 매물이 늘어 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정부는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세 부담이 매물에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집값이 수억 원 올랐는데 보유세 몇백만 원 더 낸다고 쉽게 집을 내놓겠느냐는 반론이다. 시세차익으로 얻은 불로소득에 비해 세금은 새 발의 피다. 특히 과세기준이 되는 정부의 공시가격이 작년 시가에 따른 것이어서 올해 들어 가격이 많이 오른 곳일수록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결국 보유세 부담은 ‘종이 호랑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강남구 대치동 우성 41평의 경우 시세는 14억 원 정도인데 과표인 공시가격은 8억2000만 원에 불과하다. 결국 집값은 올해부터가 아니라 시세가 적극 반영되거나 과표가 100%로 설정되는 1~2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급속한 거품붕괴를 우려했던 정부 관료들의 발언이 또 허언(虛言)이 되는 셈이어서 정책신뢰만 떨어뜨리게 된다. 또 정부가 개발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도입한 기반시설부담금과 재건축개발부담금이 7월과 9월중 시행된다. 각종 개발행위를 통해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공공 목적으로 환수하겠다는 취지로 부동산 안정에 긍정적인 요인이다. 그러나 개발주체의 반발과 건설사들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분양가에 전가할 가능성이 커 세부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면적 분양원가공개와 조속한 후분양제 도입 집값 상승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가 선분양 아파트의 고분양가다. 건설업체는 분양가 자율화 이후 주변시세를 훨씬 웃도는 분양가를 책정했고 이는 다시 주변 집값을 뛰게 만드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사업계획승인권, 감리자모집공고, 분양승인 등에서 분양가 거품을 뺄 수 있는 지방정부의 방조도 분양가 거품을 키우게 했다. 이 부분을 막을 원가공개나 후분양제 도입은 거의 답보상태다. 정부는 원가공개가 시장원리에 맞지 않다면서 전면 실시를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현행 법령에 따르면 지자체장이 아파트 공사 감리자를 모집하면서 원가내역이 낱낱이 공개되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정부는 감리자모집공고 내용이 분양원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전면적인 분양원가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5월 25일 열린우리당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와 25개 서울 구청장 후보들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실천공동협약까지 체결했다.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이와 함께 후분양제의 조속한 도입도 필요하다. 정부는 후분양을 위한 공정률을 2007년 40%, 2009년 60%, 2011년 80%로 상향조정하며, 2011년부터는 공공부문 아파트 전체 사업장에서 이를 실시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 계획이 지나치게 장기적이어서 정책의지 자체가 의문이라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선분양제는 1977년부터 아파트 분양가를 정부가 규제하는 것을 전제로, 주택업체의 채산성 악화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즉 선분양의 전제는 낮은 분양가였다. 그러나 분양가 폭등 상황에 선분양을 유지할 명분이 없다. 특히 선분양제 자체가 업체들이 부담해야 할 리스크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반시장적인 제도라는 주장이 높다. 소비자는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입하면서도 모델하우스와 분양 안내 책자만으로 수억원을 호가하는 주택을 구입해야 한다. 짓지도 않은, 가격 거품이 낄대로 낀 저질의 아파트를 빚을 내서라도 사도록 제도화한 셈이다. <산업부/박재현 기자 parkjh@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