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의 세번째 책인 누가복음의 네번째 장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당하신 시험으로 시작된다. 그 유명한 예수님의 세 가지 시험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곳에 길이 80km, 폭 40km의 사막 같은 광야가 있다. 내려 쪼이는 뙤약볕 아래 인적은 끊어지고 독사와 전갈이 우글거리는 곳이다. 그곳 광야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시작할 즈음에 40일간 금식하며 내공(內功)을 기르셨다. 광야는 시험의 자리이며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의 자리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깨우침의 자리이기도 하다. 40일간의 금식수행이 끝날 무렵 마귀가 나타나 예수님을 유혹하였다. 그때 마귀가 시도하였던 세 가지 유혹들은 예수님한테서만 끝나는 유혹들이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누구나 부딪히게 되는 세 가지 유혹이요, 시험이요, 시련들이다. 구약성경 첫번째 책인 창세기에서는 인류의 조상 아담, 하와 부부에게도 세 가지 유혹이 닥쳤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자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세기 3장 6절)
위의 말씀에서 먹음직한 것과 보암직한 것 그리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였던 세 가지이다. 신약성서의 끝 부분에 나오는 요한일서에서는 이들 세 가지를 다음같이 표현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한 일서 2장 15, 16절)
세상에 속한 세 가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 세 가지이다. 마찬 가지로 광야에서 예수께 닥친 유혹과 시험 역시 세 가지였다. 우리들 역시 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늘 부딪히게 되는 유혹이요 시험이다.
예수님께서 시험 받을 때는 광야 사막에서 40일간에 걸친 금식수행을 마친 즈음이었다. 마귀는 세 가지로 예수님을 유혹하여 하였다. 이들 3가지 시험 중의 첫째는 빵의 문제 곧 경제문제였다. 누가복음 4장에서 3절에서 예수님을 유혹하여 쓰러뜨리거나 아니면 변질 시키려는 마귀가 다음같이 도전하여 왔다.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이스라엘 땅에는 유달리 돌이 많은 나라이다. 이스라엘에 돌이 많은 탓으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던 때에 각 나라에 돌을 분배하던 때다 천사를 시켜 각 나라에 해당되는 돌을 운반하는데 천사가 이스라엘 상공을 지날 때에 실수를 하여 다른 곳으로 갈 돌자루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돌이 그렇게 많아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가 생겨날 만큼 이스라엘에는 돌이 많다. 그렇게 많은 돌들을 떡이 되게 하라는 마귀의 주문이었다. 그때 예수님의 상황이 어떠하였던가? 40일을 금식하고 난 후라 그렇지 않아도 돌들이 떡으로 보일만큼 주려 있을 때다. 만일 마귀의 말을 따라 예수님께서 돌들을 떡으로 만들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아마 세계의 식량 문제는 해결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다음같이 답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이 말씀은 구약성경 신명기 8장에서 예수님께서 인용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문제가 떡 문제 곧 경제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하여도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아셨다.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풀어나가야지 말씀을 제쳐 두고 경제문제가 해결된다 하여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다.
지금 온 세계가 경제가 어렵기에 모두가 ‘경제, 경제’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경제 이전에 말씀의 문제가 앞서야 함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앞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시험은 비단 예수님만이 당한 시험이 아니다. 모든 인류가 다 겪게 되는 시험이다. 그 옛날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겪으신 세 가지 시험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수시로 겪게 되는 시험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시험을 살펴 묵상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의미가 있게 된다.
두번째 시험은 권력의 문제와 삶에서 충성을 바쳐야 할 것들에 대한 우선순위에 대한 시험이다.
먼저 마귀가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려가서 천하 만국을 보이며 말하였던 내용을 살펴 보자.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누가복음 4장 5절~ 7절)
바로 만국을 지배하는 권력이다. 권력에 대한 욕구가 인간에게 얼마나 끈질긴 욕구인가. 숱한 사람들이 권력을 탐하여 불나비처럼 덤벼들다가는 인생 자체를 망가트리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독일의 철학자 니이체는 권력에의 의지(Wille zur Macht, Will of Power)가 인간욕구의 최상의 욕구라 하였다. 우리 주위에는 권력욕을 채우기 위하여 자신의 영혼을 기꺼이 팔아넘기는 사람들이 숱하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이 권력욕으로 유혹을 걸어 온 것이다. 이 유혹에 대하여 예수님의 응답은 간단명료하였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누가복음 4장 8절)
예수님의 대답은 권력이든 부든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최고의 가치로 섬기는 그 범위 안에서 누리고 행사되어져야 함을 말한다.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거나 하나님이 없는 권력은 의미가 없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로지 하나님만 섬길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행사할 때 값진 권력이 될 수 있다.
마지막 시험은 ‘인기와 명예’에 관한 시험이다. 예나 지금에나 시험은 그 사람의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부터 임한다. 예수님께서 40일간에 걸친 금식하신 후에 가장 주리실 때인지라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시험이 먼저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나이 33세에 출세와 권력, 인기와 명예에 가장 민감한 나이 때에 권력에 대한 시험이 있었고 이어서 사람들로부터 받는 인기와 평가에 대한 시험이 이어졌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그러면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어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하였다. 누가복음 4장 9절에서 12절 사이의 말씀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 말대로 하였으면 삽시간에 그 소문이 온 나라에 퍼져 글자 그대로 인기 짱인 인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백성들은 영웅을 필요로 하고 수퍼스타를 필요로 한다. 예수님께서 높디높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뛰어 내려 땅에 사뿐히 내려앉았다면 온 나라에 박수갈채를 받는 슈퍼스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고 마귀에게 답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신명기의 말씀으로 답하며 마귀에게 말려들지 않았다.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인기를 얻는 일에나 명예를 높이는 일에 사용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2천년간의 교회 역사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의 명예를 쌓고 자신의 이권을 챙긴 성직자들이나 교회 일군들이 너무나 많았다. 지금도 그러하다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예수님의 답에는 “예수를 이용치 말라”는 말이나 예수님을 팔지 말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아멘!!! - 김진홍목사님의 아침 묵상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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