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생명의 말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삶!

아진(서울) 2007. 4. 4. 08:13
 2007년 4월 4일 수요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지어다.” (로마서 6:10-11) 미국 유학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교수님이 강의 중에 인상적인 ‘원맨쇼’를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일단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강단 위에 누웠습니다. 누워서 계속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는 하나님을 위한 일을 말할 때가 되면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죄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다시 누워버리셨습니다. 이런 행동을 반복하면서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이유는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하나 된 성도들은 죄에 대해 예수님처럼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하나 된 성도들 역시 하나님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이 말은 직장에서 일할 때는 죽은 것처럼 지내다가 주일에 예배를 드릴 때는 다시 살아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중에 죄악과 관련된 일이 생기면 죽은 사람처럼 되고 하나! 님의 뜻을 이룬다는 확신이 있을 때면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살아서 움직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부활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크리스천 직장인의 행동 지침입니다. 고난주간에 우리 크리스천 직업인들이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일터에서 죄에 대하여는 죽겠습니다. 일터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는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삶을 늘 살게 하옵소서. 방선기 목사 


습관적으로 악한 마음을 품는 사람과는 일체 교제하지 말라.


우리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생활하고 있다.

범인은 고귀한 가정의 출신이든 아니든 도처에 있다.


범인이 뛰어나지 않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나쁜 습성이 몸에 배게 되면. 무골, 조잡, 천박한 성질이 자리를 잡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분별 없이 말을 하고 매사를 잘난 체를 하며 옹졸하다. 그들은 무지가 낳은 충실한 제자이고 거짓말의 옹호자들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면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속물들에 둘러싸여 표류하다 보면 위엄과 평판에 금이 가게 된다.

천박한 무리들 속에 끼느니 일체 관계를 하지 않는 편이 얼마나 좋은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속물들의 문제는 그 한 사람뿐으로 족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지 듣지도 말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염두에 두지도 말라.


그것이 부자로 가는 첫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