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금융브로커’ 김재록(金在錄) 씨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A그룹의 H 임원은 최근 보름 사이에 몸무게가 3kg이나 줄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면 6월 초 A그룹에 대한 수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첩보가 입수돼 밤잠을 설치기 때문이다.
그는 “지방선거가 끝나면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도 조사에 나선다는 말이 있어 그룹 지휘부가 초비상이 걸렸다”며 “사정기관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느라 괴롭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검찰이 현대차 수사 과정에서 경제에 미치는 파장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여 준 데다 김재록 로비 사건 수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편법 승계 의혹이 불거질 수 있는 기업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고 판단한 S, H, L그룹은 총괄본부 차원에서 시나리오까지 만들어 대비하고 있다. 문제가 될 수 있는 서류와 파일을 파기하고 예상되는 검찰의 요구와 질문에 대응하는 방법을 마련하는 등 ‘도상(圖上) 훈련’까지 한다. 10대 그룹 총괄본부 주요 임원들은 최근 비공개 모임을 열고 관련 첩보를 교환하며 긴밀히 협조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 모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간부도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화가치 상승과 고(高)유가로 경영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지만 기업들이 사정당국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느라 경영은 뒷전으로 밀어놓은 양상이다.
정부·여당의 사회공헌 요구와 협력업체와의 상생경영에 대한 압박도 대기업에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재계는 정부 노선에 반발하는 것으로 비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 경제단체는 얼마 전 언론에 정부 인사 초청행사 건이 사전에 보도되자 경위서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은 뒤 대(對)정부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이 경제단체 임원 B 씨는 “현 정부가 ‘여론 정치’를 하다 보니 조금만 민감한 발언이 나와도 곧장 경위 파악에 나선다”며 “이래서야 기업들이 할 말을 제대로 하겠느냐”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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