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정치와 사회

'두산' 판결 무엇이 문제였나

아진(서울) 2006. 2. 18. 13:07
 [머니투데이 양영권기자]대법원장의 '유전불벌' 발언으로 다시 주목받게 된 두산 사건은 두산그룹 총수 일가가 계열사를 통해 286억원을 횡령해 생활비와 대출금 이자 등으로 쓴 내용이 골자다.

박용오 전 회장의 진정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검찰 때부터 '봐주기' 수사로 논란이 된 바 있다.

검찰은 총수 일가 가운데 적어도 한 명 정도는 구속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지난해 11월 전원 불구속 기소하면서, "구속이라는 것은 하나의 처벌이 아니라 수단이다. 구속을 안해도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는데 굳이 구속할 필요성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 피고인은 불구속한다는 원칙을 검찰이 지킨 것처럼 보이나, 구속을 고집해 법무 장관의 지휘권 발동 사태까지 불러온 강정구 교수 사건과 대비되면서 '유전무죄' 논란을 일으켰다.

이같은 비판이 일자 당시 검찰은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해 엄정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1심 재판부 역시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솜방망이'처벌이라 할 수 있는 집행유예 판결을 내리게 된다.

특경가법에 따르면 박 회장 등은 5년 이상의 징역, 최대 무기징역까지 처해져야 하는데도, 형의 집행을 유예해주기 위해 이 범위를 벗어난 징역3년을 선고한 것이다.

두산 사건 1심 재판장이었던 강형주 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는 일단은 "비자금을 조성해 대주주 일가의 생활비나 대출금 이자로 쓴 것은 두산은 물론 국가경제의 신인도를 낮춰 죄질이 무겁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비자금을 조성한 계열사는 사주 일가가 지분을 모두 모두 출자한 회사이고 횡령한 금액을 전액 각 회사에 반환한 점을 이유로 내세워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

살아있는 재벌에게 가벼운 처벌이 내려지는 것은 이번 뿐이 아니다. 1조5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와 사문서 위조 등으로 기소됐던 최태원 SK 회장은 1심에서 징역3년의 실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은 집행유예형으로 감형했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은 특경가법 배임 혐의가 적용됐으나 불구속 기소됐고, 1심과 항소심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은 이런 일련의 판결들이 사법부 불신을 초래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판단한 데서 나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강 부장판사는 사실상 질책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이 대법원장의 발언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앞으로 판결을 지켜보면 알 것"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다른 판사들 역시 사안의 민감함을 의식해 의견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부의 한 판사는 "윗분의 생각에 대해 내가 입장을 밝히는 것은 곤란하다" 며 평가를 거부했다.

양영권기자 inde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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