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정이 어려운 고통의 터널을 지나며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었을 때 아내는 간혹 한숨을 내쉬곤 했다.
왜 그렇게 한숨을 짓느냐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싫었다.
신앙인은 한숨을 쉬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지금의 고통과 아픈 현실은 오히려 나에게 독수리 처럼 한 단계 상승하는 믿음을 가져다 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나약성은 근심 걱정에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음을 부인 할 수 없다.
초대교회 지도자 베드로가 옥에 갖혔을 때에 교회는 한숨짓지 않았고 모두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했다.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풀려났지만 그들은 현실을 인정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방법은 이런 것이다.
한숨짓는 자 보다는 먼저 문제의 현실 속에 기도하는 자의 편에 항상 서 계셨다.
문제 앞에 에스더는 좌절하고 한숨만 내 쉬는 자가 아니였다.
자신의 신분을 내어 버리고 죽으면 죽으리다 오직 금식하며 기도에 힘썼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초대 교회 성도들은 전혀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성령의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고
이는 곧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고 교회 부흥의 발판이 되었다.
상황은 나아진게 없지만 그들의 가슴은 뜨거웠고 담대해 졌으며 탄식이 변하여 찬송이 되었고
복음의 담대한 용사들이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숨과 탄식이 나온다면 성경의 위대한 신앙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면 나의 길이 열리게 되는 지혜를 얻을 것이다.
사자굴 앞에서도 목베임 앞에서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는 자리에서도 그들은 한숨 짓지 않았다.
한숨 짓는 다는 말은 밥을 짓듯이 자신이 근심 걱정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한숨지을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차라리 기도하라".
그것이 명답일 것이다.
주기철 목사님 가족들은 목사님을 감옥에 보내 놓고 왜 번민과 한숨지을 상황이 아니였겠는가?
그들은 사자와 같이 담대했다.
그리고 용감하게 믿음으로 싸우며 기도로 개선가를 부르기 까지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
용맹한 호랑이나 사자는 한숨짓는 법이 없다.
한번 실수 하여도 또 다른 기회를 찾는다.
능히 우리로 하여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나와 믿는자들의 편에서 오른손을 잡고 번개와 같이 나의 찰라의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고 잡아 주실 것이다.
한숨은 불신의 표현이다.
믿는다면 기도하라.
믿는다면 담대하게 주님과 함께 오늘을 당당하게 걸어가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 주님이 오늘 나와 함께 하심을 의심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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