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젼 24시/새날의 아침

말뚝박는 목사

아진(서울) 2017. 3. 6. 06:29

따르릉 따르르릉
다급한 성도의 방문 요청에
맨발로 달려가 보니 기다리는 건
병든 송아지 한 마리
안타까움에 일그러진 성도의 얼굴
얼떨결에 송아지 머리잡고 기도했다.
그리고 난 그 교회에 처음으로 말뚝을 박았다.

부임하고 맞이한 첫 주일
고장난 앰프 끝내 손 못 보고
고래고래 소리내어 예배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성도들의 전화 전화 전화
"목사님! 온 마을에 소리가 다 나갔어요!"
앗차!
외부 스피커로 온 마을에 생방송된 예배실황.

가난한 성도
가을에 추수하여 방앗간 기계에서
처음 떨어지는 알곡 한 말 자루에 받아
어깨에 메고 교회로 달려오는데
성도의 검게 탄 얼굴 사이로
흰 이가 반짝거린다.
그 날 내 마음엔 눈물의 강이 생겼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아침
방문 앞 헌 신문지에 쌓인 이름 모를 산나물 한 봉지
별것 아니어서 드리기 민망해 살며시 두고간

이름 모를 성도의 정성 그 마음이 감사해
내 마음 눈물의 강에 꽃이 피었다.

겸연쩍게 내미는 까만 비닐봉지
그 속엔 파란 풋고추
하나

셋.....
중학생 아들녀석 점심 찬으로 삼기 전에
버선발로 달려가 텃밭에서 딴 처음 열매라고
말끝을 흐리는 성도의 마음에
난 또 하나의 말뚝을 박았다.

까만 얼굴 피곤한 모습
논 일 끝내고 찾아 온 예배당
그들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내 얼굴 희지 않고 검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마음의 짐을 조금 벗었다.

부임한지 팔 년 만에
학생회 사라지고 주일학교 사라지고
동네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줄어들고 예배당
빈 좌석은 점점 늘어가는데 이 모두가 못난 목사의
책임인양 교인보기 민망하고 주님보기 죄스럽다.
죄인이 따로 없는 목사의 마음

아빠가 최고인양 자라난 아이
어느새 철이 들어 눈치는 빠삭한데
애써 외면하고 어깨에 힘줘 보지만 감출 수 없는
작은 시골교회 아빠 목사의 처진 어깨는
무엇으로 감춰야 할거나.

무더운 피서철의 예배시간
피서 길에 어쩌다 들른 도시교인
수 억의 예배당에 시설은 어쩌구 저쩌구
자랑이 늘어갈수록 내 모습 점점 작아지고
내 얼굴 검음이 부끄러움 되어
쥐구멍을 찾는다

오늘은
어린이가 주인공인 어린이 주일
주인 없는 시골교회 썰렁함만 더하고
힘없이 내려와 인사하는데 구십을 바라보는 할머니
집사님 못난 목사 손 잡으며 하는 말
"내 죽을 때 까지 가지 마세요!"
그 애틋함 내 마음을 적시고
가슴 아린 감사함에 오늘도 하루를 접는다.

내 나이 마흔 하나
오늘로 부임한지 만 팔 년이 되었다.
아직 시골교회에 말뚝을 박기는 이른 나이
도회지에 나가서 목회하고픈 마음
아직 간절하고 이 궁색함 면하고픈 마음 간절한데
어느새 내 손엔 또 하나의 말뚝이 들려있다.
쾅! 쾅! 쾅!.....

'비젼 24시 > 새날의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숨쉬지 말아라   (0) 2017.03.09
나의 기도, 하나님의 응답  (0) 2017.03.07
신앙 좋은 사람  (0) 2017.03.03
하나님 때문에 까무려칠 일이 ~~   (0) 2017.02.27
말의 위력  (0) 2017.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