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생활 시절에 어느 업체에서 치약1개당 1원씩 공개 입찰한 일이 있었다.
경쟁사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지휘관은 이 보고를 받고 남을 생각하지 않는 양심 불량이라 하여 그 업체를 탈락 시켰다고 한다.
사람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
양심이 올바르지 못하면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친구가 없게 마련이다.
간혹 신앙인 중에는 안믿는 사람들을 그와 같이 치부하여 그들과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믿기 전에는 원만한 친구 관계가 있었는데 세상과 끊는다는 마음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도 청산 하는 것이다.
물론 술과 도박등 세상을 좋아하는 세상 친구들과의 세속적인것을 멀리 한다는 의미는 이해가 가나 이는 매우 잘못된 처사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 했다.
세상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본보기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부분을 곡해한 부분이다.
이는 세상 사람들과의 단절을 의미하며 선교적인 입장에서도 무엇인가 어긋난 모양세다.
교회의 중직일 수록 세상 친구는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집사 때에는 잘 어울리던 친구들이 장로가 되면 왠지 서먹 서먹하게 되는 경우를 본다.
자신도 모르게 장로로서 권위나 가르치려는 태도 때문에 식상해 하고 피하려는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목사가 되면 이런 모습은 더욱 두드러진다.
목사가 되면 당연히 세상 친구를 멀리 해야 하는것으로 오해하고 있고 교회 친구들과도 관계가 소원해진다.
목사는 목사끼리 장로는 장로끼리 어울리는 풍토는 교회내에 암적인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같은 교회 내 에서 목사는 거의 친구가 없다.
목사나 장로가 되면 친구를 잃고 따로 행동하게 되고 상대하는 대상은 목사나 장로로 축소 되어져 간다.
교회에서 친교를 말하고 관계를 말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교회내의 헛점일 수 밖에 없다.
자기 자신의 위치와 명예를 위해 남을 무시하는 태도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구별 되었다는
우월 주의가 낳은 산물이다.
섬김의 미덕은 이런것 부터 고쳐져야 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친구로 삼으셨다.
창조주 예수님이 피조물과 같이 하찮은 인간에게 손을 벌려 나는 너희의 친구라 하시면서
끝까지 사랑의 본을 보이셨다.
관계가 멀어지거나 뒤틀린 친구관을 가지고는 복음의 장애 요소가 될 수 밖에 없다.
왜 중직자나 목사는 교회내에 마음을 털어 놓고 이야기 해야 할 친구가 없는가?
그것은 나는 너희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는 교만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 둘려 쌓여 존경과 사랑을 받아도 마음 털어 놓을곳 없고 교회내에서 늘 외로운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더 거룩한척 ,많이 아는척, 잘 믿는 척하며 외식하는 생활이 주식이 되어 자신의 그 가면을 벗어 생얼굴을 드러 내기엔 용기가 없어진 탓이다.
이런한 자들이 교만한 양심불량자다.
명예와 교만의 가면을 벗으면 친구가 많이 생기게 되어 있다.
이런척 저런척만 안해도 그 모습은 아름다운 순수성이 되 살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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