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나는 40키로그램정도의 쌀자루를 메고 아파트 4층건물을 올라가도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에 절반도 못되는 것을 가지고도 중간에 쉬어서 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의 건강에도 최고조에 이르는 절정의 시기가 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더 이상 오를수 없이 다운되고 만다.
사람의 얼굴도 가장 전성기에 아름답게 보이며 성숙미를 자아낸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장 전성기적인 믿음은 어느 때에 오는 것일까?
사람마다 천차 만별일 것이다.
예전에는 뜨겁게 신앙생활을 했었는데 하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때가 자신의 최고조의 신앙을 나타내는 클라이막스였고 다시는 그런시기가 오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 부족을 느끼고 아쉬움이 남는다.
나이가 들었다고 신앙의 전성기는 가버린 것일까?
예수님의 인생에 클라이막스는 십자가상에서 였을 것이다.
베드로나,스데반, 그리고 폴리갑 같은 신앙의 선배들에 신앙의 절정기는 죽는 그 순간 순교의 현장에서 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현대인들의 신앙에 절정기는 나이와 함께 낙엽따라 가버렸다고 이제는 후배들에게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지 않은가를 점검해 볼 때이다.
나는 소망 한다.
오늘 하루 하루가 나의 신앙에 클라이막스가 되기를 ....
어제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하며 복음을 위해 애쓰는 그런자가 되고 싶다.
젊어서는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겠노라고 베드로처럼 말도 했었으나
베드로보다 수천번 수만번 더 넘어지며 살아온 나의 생애가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십자가 위에서 나를 바라 보시며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기도하시는 주님 앞에 죄송스럽다.
나의 신앙에 절정기를 되 찾기 위해 오늘 나는 나의 믿음이 아닌 주님이 주시는
믿음의 선물을 바라 보며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소리쳐 외쳐 본다.
우리는 죽도록 충성을 말하지만 나는 죽도록 충성을 해 본적이 없다.
죽을 만큼 힘들어 신앙생활에 나 자신의 생명을 바칠 만큼 충성햇다고 말 할 수 없다.
세상에 것을 얻기 위해서는 매일 같이 힘든 세상속에서 짊어져야 할 무게들을 감당했지만
주님의 일은 손톱 만큼이나 적게 하고는 온갖 충성을 다한듯 누가 나를 알아 주기를 바랬고
주님이 그에 대한 보상의 주시기를 기대하는 어리석은 나였었다.
나는 스스로 믿는다.
나의 신앙에 클라이막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클라이막스 다음엔 내리막이 오게 마련인데 그 날은 내가 죽는 날이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