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생명의 말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의미

아진(서울) 2007. 4. 12. 08:47

2007년 4월 12일 목요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8)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主)님을 위해 사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서는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문제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입으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며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을 자주 들었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1세기 로마 사회의 정황을 고려하면 성도들이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것은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쉽게 부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습니다. 1세기 당시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사람들이 ‘주’(헬라어로 ‘큐리오스’)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바로 로마의 시저(=가이사)였습니다. 시저에게만 공적으로 주라는 칭호를 붙이며 존경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세기 당시의 크리스천들은 로마법에 따라 사형을 당해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그를 위해 죽는 것도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크리스천들! 의 이런 태도는 더 이상 시저를 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그런 심각한 죽음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거의 위험을 느끼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시인하고 부르기도 하는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세기를 살던 믿음의 선배들의 고민과 결단에 동참할 수 있는가 우리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는 고백에 가슴이 뜨거워질 수 있도록 오늘도 일터에서 노력합시다. 그런 사람들을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가장 실감나게 제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을 불러보고 싶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주님을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원용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