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정치와 사회

"지하철공사 때문에 물난리 났다"

아진(서울) 2006. 7. 16. 20:35

▲ 16일 서울 양평동 안양천 양평교 부근 둑이 유실돼 양평동 일대가 침수되자, 주민 200여명이 당산초등학교 강당 임시대피소에 모여 있다. ⓒ2006 오마이뉴스 이종호

안양천 제방 바로 옆 양평동6가 지하셋방에 혼자 살고 있는 강주아(87) 할머니. 16일 오전, 밖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지만 '별 일이야 있겠나' 하는 생각에 아픈 몸을 바닥에 눕혔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온몸에 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손을 내밀어 장판을 더듬거렸더니 질척질척 물기가 잡혔다.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을 밟았는데, 이미 장판 밑에 흥건히 고였던 물이 장판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깜짝 놀란 강씨 할머니는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왔다. 어찌 해야 하나. 순간 옆 집에 혼자 살고 있는 친구 김광자(81) 할머니가 떠올랐다. 강씨 할머니가 자고 있던 김씨 할머니를 깨워 당산초등교 4층 강당에 온 것은 낮 12께다. 이날 새벽 안양천 제방 일부가 무너졌고, 하천의 물이 지하철9호선 공사 현장을 지나 시내쪽으로 흘러들었다. 특히 저지대인 양평2동 주택 수백채가 침수되자 2000여 명의 주민이 인근 학교로 분산 대피했다. "아기 기저귀가 꼭 필요한데 미처 챙겨오지 못했다" 16일 오후 4시께, 당산초등학교 강당에는 물에 잠긴 집을 두고 나온 주민 수백여명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일부 주민은 아예 자리를 펴서 누웠고, 일부는 연단에 있는 TV를 통해 수해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대여섯명이 장난을 치며 뛰어다니고, 선풍기 8대가 돌아가는 등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급하게 집을 나서면서 옷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챙겨오지 못한 주민들은 식사와 잠자리 등을 걱정하고 있었다.

또 대피소로 마련된 강당은 4층이지만 화장실은 1층만 개방됐다.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불편한 강씨 할머니 등은 강당 뒷편 안보이는 곳에 요강을 마련해 놓고 볼일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양평동 6가에 살고 있는 전경철(53)씨는 8개월된 손주를 안고 물을 먹이고 있었다. 전씨와 전씨의 어머니, 아내, 아들 내외, 처제 등은 대피준비령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집을 나와 강당으로 왔다. 전씨 가족 역시 옷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들고나오지 못했다. 전씨는 "가장 걱정되는 게 아기 기저귀"라며 "분유는 몰라도 기저귀는 꼭 필요할 것 같은데 미처 챙기지 못했다"고 걱정했다. 양평동 한신아파트 1층에 살고 있는 송아무개(59)씨도 오후 2시께 몸만 챙겨서 집을 나왔다. 송씨는 "다른 것은 가지고 나올 수가 없어서 옷 2벌만 챙겼다"며 "한신아파트가 고지대여서 잠기지는 않겠지만 주변에 물이 많아서 고립될까 봐 미리 나왔다"고 말했다. 그 와중에 돗자리라도 챙겨서 나온 주민들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윤화중(73)씨 부부를 비롯해 대부분은 차디찬 강당 바닥에 전단지나 신문을 깔고 앉았다. 윤씨의 아들은 집이 얼마나 물에 잠겼는지 보기 위해 나가 있었고, 며느리와 손자는 친척집으로 보내졌다. 수재민들, 지하철공사 성토..."이번 물난리는 천재가 아니라 인재"

▲ 오세훈 서울시장이 16일 서울 양평동 일대 수재민 200여명이 모여있는 당산초등학교 강당 임시대피소를 찾아 위로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서울에 살면서 이런 물난리를 만날지 상상도 못했다"며 이번 침수 사태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일부 주민들은 복구 공사가 늦어지는 것에 항의하거나 이번 수해를 지하철공사의 날림공사 탓으로 돌렸다. 이범얼(52)씨는 "오전 6시에 둑이 뚫렸다고 하던데, 오후 6시가 되도록 왜 못막고 있느냐"고 성토했다. 김한용(36)씨는 "이번 물난리는 천재가 아니라 인재"라고 규정한 뒤 "지하철공사에서 장마철 대비 공사를 안하고 날림으로 공사를 했기 때문에 물난리가 생겼다"며 "3-4년 전에도 300미리 이상 비가 내렸지만 안양천 제방은 문제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신아무개(42)씨도 "지하철공사 전에는 아무 무제가 없었는데, 공사 후에 고수부지나 자전거 도로 등에 사람도 못다니게 하더니 결국 비가 오니까 난리가 났다"고 울분을 토했다. 신씨는 고향에 있다가 이날 오전 연락을 받고 달려왔지만 집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강당으로 몸을 피했다. 오후 6시 20분께 현재 당산초등학교에 대피한 인원은 118가구 566명으로 늘었다. 이들 외에도 400여가구 1500여명도 인근 4개 학교에 분산 대피한 상태다. 대피하지 않고 있던 한신아파트 고층 주민들도 경찰이 나서서 대피를 시키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전기 감전과 가스 노출 위험 때문에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있는데, 주민들이 잘 따르지 않는다"며 "일부러 끌어낼 수도 없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지하철공사측 "안양천 제방 복구, 3~4시간 이상 더 걸릴 것 같다"

▲ 16일 서울 양평동 안양천 양평교 부근 둑이 유실돼 양평동 일대가 침수돼, 주민 200여명이 당산초등학교 강당 임시대피소에 모여 있는 가운데 기상게시판에 `불쾌지수`가 64.0을 가리키고 있다. 재해대책지휘본부에서는 수재민들에게 오후 7시께 식료품과 담요를 나눠줄 방침이다. 간식은 오후 5시에 400개의 컵라면이 제공됐다. 대피소에는 적십자사와 부녀회, 자원봉사연합회 회원들이 나와 수재민을 돕고 있고, 적십자에서는 내일 오전 식사까지 준비해놨다. 재해대책지휘본부는 수재민이 계속 늘어날 것에 대비해 한강전자공예고등학교에 새로운 대피소를 준비해놓은 상태다. 한편 안양천 제방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는 지하철공사의 한 관계자는 "유실된 부분이 10m 정도인데 반 정도 막았다"며 "물살이 세고 수심이 깊다. 깊은 곳은 15m 이상 된다.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는 확실히 알수 없지만 3~4시간 이상은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복구팀은 무너진 제방에 청소차량 뒤에 실리는 컨테이너 박스 3개를 먼저 집어넣었고, 현재까지 덤프트럼 500대 분량의 돌과 흙을 쏟아부었다.

 

2006.7.16.(일) 서울중부지역 집중 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