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정치와 사회

한국 선거, 50대 이상이 결정한다

아진(서울) 2006. 6. 13. 23:36
 [2006-06-13 20:06]-[양상훈칼럼]

한국 정치에 50대 이상이 최대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조만간 모든 선거의 결과를 좌우하는 세력이 된다. 사회의 고령화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세대의 선거 결정력은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게 돼 있다. 지난 5·31 지방선거는 우리나라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50대 이상 인구가 국민의 4분의 1을 넘은 상태에서 치러졌다. 올해 우리나라 인구에서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6%였다. 2002년 대선 때 50대 이상 인구 비중은 22%였다. 이들은 압도적으로 한나라당 후보를 더 지지했지만, 압도적으로 민주당 후보를 더 지지한 20~30대 유권자들에게 밀렸다. 50대 이상이 투표율이 더 높았지만, 인구 비중 35%로 숫자 자체가 많은 20~30대를 당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지금, 상황은 상당히 바뀌고 있다. 그 사이 전후(戰後) 베이비 붐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50대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4년 사이 50대 이상의 인구비중은 4%포인트 정도 높아진 반면, 20~30대의 인구 비중은 2%포인트 줄었다.

더구나 50대 이상은 투표율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5·31 선거 사전조사에 따르면 50대 이상의 투표율은 7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됐다. 20~30대의 두 배 이상이고, 40대보다도 20%포인트나 높다. 유권자수에 투표율을 곱해 계산하면, 실제 투표한 인구에서 차지하는 50대의 비중은 무려 50%나 된다. 투표한 사람의 절반이 50대 이상이었던 것이다. 이들 중 66%가 한나라당에 투표했고, 17%만이 열린우리당에 투표했다. 5·31 선거는 이들이 결정지은 것이다. 50대 이상의 인구비중은 앞으로 계속 높아진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내년 대선에서 50대 이상의 비중은 27.3%다. 다음 2012년 대선에선 33.5%가 되고, 그 다음 2017년 대선에선 40.7%로 40%를 넘어서게 된다. 반면 20~30대의 비중은 2012년 30%, 2017년엔 28%로 줄어든다. 만약 50대 이상이 지금의 보수적 투표 성향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열린우리당이든 그 후신의 어떤 정당이든 거대한 벽에 가로막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 정도로 연령층별로 다른 정치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20~30대가 나이 들어 50대가 되면 과거의 정치 성향과는 다른 50대의 특성을 보인다. 우리나라 연령층에서 가장 특이하다는 이른바 386세대도 그 중 40대에 들어선 사람들은 30대 때와는 다른 정치 성향을 보이고 있다. 현재 386세대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에 걸쳐 있는데, 이번 5·31 선거에서 40대는 50대와 유사한 투표 성향을 보였다. 북한의 존재가 그대로 있는 조건에선 가족과 직장을 책임진 우리나라의 50대 이상은 보수적 태도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50대 이상 인구 비중의 폭발적 증가는 중도진보적 정당엔 악몽이다. 결국 중도진보 정당의 미래는 이 같은 사회 구조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처하기에 따라선 악몽을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지금 새로 50대로 진입하는 세대는 과거의 50대 이상과는 차이가 있다. 대학 교육이 크게 증가한 이후 세대이고, 우리 사회가 개방되는 것과 함께 성장해온 세대다. 비합리적이고 완고한 진보에 혐오감을 느끼는 것 못지않게 그런 보수에도 부정적이다. 중도진보 정당이 우리 사회구조의 변화에 대응하는 합리적인 정책을 내놓는다면 50대 이상의 정치 성향이 언제까지나 보수적으로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그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문제는 중도진보 정당이 친북(親北)과 결별하고, 반항·공격적인 성향을 온건하게 바꿀 수 있느냐이다. 사회의 구성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데, 중도진보 정당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5·31’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