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민주화/최장집/후마니타스
5·31 지방선거의 결과는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세력에게 철저한 반성을 촉구한다. 국민들은 그들에게 권력을 주면서 “당신의 실력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는 “당신들은 틀렸다”는 것이다. 2002년 민주정부에 대한 뜨거운 열망은 2006년 차가운 실망으로 바뀌었다. 더 큰 문제는 실망한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 내지 냉소속에서 무조건적인 성장주의,무비판적인 시장주의,성찰 없는 세계주의로 몰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향후 어떤 민주정부도 이보다 좋은 조건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노무현 정부는 왜 이렇게 처참하게 실패했을까. 이 질문은 여당과 정부의 것만이 아니라 민주화 세력 전체의 것이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과)의 신작 ‘민주주의의 민주화’는 이 질문을 풀어갈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금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개혁,진보,민주화 등이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말이자 도덕성의 원천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말들은 아무런 도덕적·실천적 힘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오히려 냉소와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는가? 최 교수는 먼저 민주화 세력의 무능을 지적한다. 그는 “정부는 보통사람들의 경제적·사회적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따지며 “권위주의를 붕괴시키는 능력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은 질적으로 다른 수준의 문제”라고 잘라말한다. 민주화 세력의 핵심인 386세대를 향해 “민주주의 하에서 민주적 방법으로 자신들의 목표를 실현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체제에 저항하는 세대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실제로 건설해야 할 중심세력으로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고 비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민주정부가 신자유주의에 완벽하게 포섭되면서 지지자들의 요구를 배신했다는 데 있다. 저자는 중산층 해체,비정규직 증가,고용 불안,양극화 심화,복지예산 축소,가족 해체 등을 나열한 후 “이른바 민주정부 하에서 이런 일들이 억제되기는커녕 오히려 방관,확대되고 있다”며 “절차적 차원의 민주화는 계속 진전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이념에 반하는 불평등과 계급화는 더욱 심화되었다”고 지적한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로 주목받아온 최 교수는 이 책에서 민주정부가 왜 국민들을 배신하게 되는가를 규명하고자 한다. 그는 민주주의를 통해 어떤 정부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늘 변형의 위기를 겪게 마련인데,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역시 그같은 변형의 결과물이라고 본다. 그는 이 변형이 언론이나 기득권층의 반발 때문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보수적 기성질서와 같은 외부의 압력이나 제약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어떤 가치와 어떤 생각으로 민주주의를 운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제대로 고수하지 못했다”고 못박는다. 최 교수가 쓴 책들의 제목이기도 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년) 혹은 ‘민주주의의 민주화’(2006년) 담론은 이 지점에서 성립한다. 그는 “민주화 이후 체제의 변형을 막기 위해 민주주의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다”며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좋은 정당의 창출과 이를 통한 정당체제 전체의 변화”를 꼽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개혁의 목표는 당연히 정당개혁일 수밖에 없다. “정치개혁의 목표는 정당의 사회적 기반을 확대하는 것이어야 하고,사회 요구로부터 괴리된 정당체제를 개혁하여 정치와 대중사회가 소통하는 데 두어져야 할 것이다.” 정당에 대한 국민 참여가 늘고,국민에 대한 정당의 책임이 커지면 민주주의는 변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내실화를 위해 정당과 정치를 강조하는 그의 입장은 운동과 투쟁에 주목하는 대다수 진보학자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민주주의가 여전히 희망의 언어가 될 수 있는가’하고 묻는 2006년의 한국인들을 향해 최 교수는 “분명히 그렇다”고 얘기한다. “오늘날과 같은 현실에서 정치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지배적인 여론에 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의 적극적인 역할이 부정되는 한 민주주의의 발전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거니와 공동체 전체의 복지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시민적 삶이 구현되기도 어렵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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