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젼 24시/새날의 아침

예수를 바라보자

아진(서울) 2017. 2. 22. 06:40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한 일, 슬픈 일들이  우리의 삶에 밀려와 온갖 괴롬을 더하게 되는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난 아무런 잘못한 일이 없는데 트집을 잡아 뉘명을 씌우고 억울한 일들을 겪게 될때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 섞인 하소연으로 울부짖을 때가 있다.


되돌아 보면 내 생에에도 그런 일들이 여러번 있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미운 마음과 다시는 보고 싫지 않은 사람으로 인해 만나는것 자체가 괴로움인적이 있었다.


죄인인 인간도 그럴진데 우리 주님은 죄 없으신 몸으로 이땅에 와서 겪은 수없이 많은 억울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전능하신 우리 주님도 그 억울함을 억누를 길이 없어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기도 하셨다.


주님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병든자를 고쳐 주시고 배고픈 이들을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먹이시며

죽은자를 살리시고 하늘의 소망을 주셨지만 정작 그 분은 내 집 한칸 가진적이 없으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건만 인자는 머리 둘곳이 없다 말씀하신 그분의 생에는 오직 인간들을 위한 헌신과

십자가 상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내어주신 사랑의 결정체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죄없는 그분이 매맞고 창에 찔리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기 까지 갖가지 거짓 송사로 고난 당할 때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을 당한자가

이 땅에 어디에 있겠는가?

제자 가룟유다의 배신과 사랑하던 베드로 마져 저주하며 주님을 모른다고 변절의 변을 늘어 놓을 때의 그분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창조주 되신 그분이 피조물에게 매맞고 침뱉음의 모욕을 받으며 퍼붓는 저주와 대못을 망치로 손과 발에 박을 때 우리 같으면

억울할 정도로 끝 날 일이 였겠는가?


우리는 누울 집이 있고 먹을 양식이 있으며 입을  옷으로 치장하며 살면서도 늘 억울한 일에만 치우쳐

자신을 그곳에 메몰 시키고 인생을 불행하게 살고 있는 이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다(로 3:23)

이러한 인간이 어떠한 심판을 받고 고난을 받은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죄 없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으로서 이러한 억울한 일을 당하시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하마 약속하실 뿐더러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십자가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리시던

정말 바보같은 사랑을 주신 분이시다.


이보다 더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라 당당히 말씀하시기에 합당하신 주님이

고난을 참고 견디며 이기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시며 능히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 주신다.


오늘 화가 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이런 주님을 생각하며 참았다면 정말 잘한 것이다.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에서 나를 못박아 내 안에서 의가 나타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억울 함을 당해도 서러워 말자.

주님도 억울함을 참아 내셨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시지 않는가!

우리를 바라 보시며 우리의 고통을 함께 지시는 주님이 능히 우리의 모든것을 신원해 주시고

이 땅에서가 아니면 저 하늘 나라에서라도

더 큰 것으로 갚아 주실 주님의 준비하심을 믿자.


그런 소망이 있다면 어려움을 당해도 그것이 복이요 환란중에 기뻐 할수 있는 원인이 된다.

오직 그가 이루시고 우리로 하여금 단련하여 정금 같은 믿음으로 나오게 하시는 그분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에 순응하며 살자.


억울 한 일을 당할 때마다 주님 당신 때문에 참을 수 있습니다 하는 고백이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