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상가를 돌아 다니며 구두를 수거해다 구두를 닦아주는 부부가 있었다.
비록 힘든 삶 같이 보였으나 아내되신 자매님은 매우 신앙이 독실 했었고 늘 입에서 찬송이 끊이지를 않았다.
항상 웃음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시는 분으로 기억이 된다.
어느날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그 자매님 앞에서 욕을 하며 모욕을 하게 되었다.
다른 기독교인들 같으면 말 한마디 못하고 기가 죽어 있었을 텐데 그분은 달랐다.
사과하라는 것이였다.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신 아버지이신데 내가 당신의 아버지를 욕하고 모욕한다면 가만이 있어야 하겠느냐는 것이였다.
하나님이 당신 에게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면박에 가까운 항의를 했다.
너무나 강하고 당당하며 거센 항의에 주변 사람들은 말 한다디 못했고 그분은 결국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과를 받아 내고야 말 았다.
그 후로 감히 그 자매 앞에서는 하나님을 욕하거나 힐난하는 일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신의 부모를 욕하고 저주 한다면 그 누구나 의분이 일어나 싸우려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하나님 아버지를 욕하고 모욕하는 곳에서는 순한 양처럼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하던 골리앗 앞에 다윗의 의분과 그의 행동이 보여준 결과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히 살지 못해서 기가 죽었다고 변명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잘못은 시인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지만 나 자신이 잘못을 안하고 당당하게 살아 왔음에도 하나님을 향하여 욕하는 자들에게 따끔한 말로 경고를 날릴 필요가 있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속에 동네 북이 아니다.
존귀한 존재들이다.
우주만물의 창조주를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다.
당당하지 못하고 기가 죽어 있으면 세상 사람들은 더 밟으려 한다.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바울처럼 아합왕 앞에서 엘리야처럼 당당하면 그들이 다시는 우리를 힐난 하는 일에 주저하게 될 것이다.
바르게 살지 못하면 우리는 바보가 되고 그들의 업신 여김을 받게 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당당할 것을 주문한다.
사람의 잘못을 가지고 하나님을 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최소한의 의분도 없다면 어찌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주의 군사라 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바른말 하다가 예레미아처럼 구덩이에 빠뜨림 당하기도 하고 다니엘처럼 불속에도 들어 갔으며 베드로처럼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었고 가죽벗김을 당하여 순교의 자리에도 이르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을 성경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하였다.
세상 사람들의 입으로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에 적극 대처하면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이나 교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잘못도 크지만 세상 사람들의 죄 또한 다르지 않다.
똥뭍은 개가 겨뭍은 개를 탓하는 세상에 산다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옳바른 삶으로 저들과의 구별된 삶을 살아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방치하여 탈이 나기전에 이제 부터는 적극 대처하여 교회의 허물어진 성을 재건해야 한다.
세상에는 도비야와 산발랏 같은 대적자들이 많으나 하나님은 주를 위해 싸우는 자들과 함께 하실 것이다.
기독교인들이여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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