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8시 50분, 손에 로또를 쥐면서 TV앞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감을 가지고 당첨결과를 지켜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방송시간을 놓치고 인터넷으로 결과를 검색해보시나요? 지갑 어딘가에 꾸깃꾸깃 몇달전에 산 로또를 깜빡하고 넣어 두신분도 계실겁니다.
5년전 로또 2등맞은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얼큰히 술을 먹고 2차 가려는 순간 친구에게 문자 한통이 왔습니다. 그 상황은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나 로또2등 맞았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너만 알고있어라. 다음주에 은행가서 바꾸고 전화할께"
이 문자를 보고 얼마나 기뻤던지. 제가 당첨된 기분이었습니다. 친구라는 관계가 돈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혹시 나에게 조금 나누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가지고 있었죠.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친구의 당부는 왠지 기분이 좋게 들렸습니다. 비밀공유의 힘이라고 할까? 뭔가 어깨가 으쓱해 지더라구요. 그날 마신 소주는 얼마나 달던지, 아직도 그렇게 맛있는 술은 먹어보지 못한것 같네요.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당첨금 수령하고 연락을 준다는 놈이 연락이 없습니다. 그 전에도 몇번 전화시도는 했으나 전원이 꺼져있다는 멘트뿐.... 계속 연락을 시도했었죠. 언젠가부터 그의 전화는 해지가 되어 있었고, 이녀석이 잠수를 탄 사실을 알았습니다. 친구녀석 부모님도 로또 당첨맞은 사실을 모르시는 눈치였습니다. 서울에 잠시 일이 있다고 올라갔다는 사실뿐..
그후로 그 친구와는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때는 밀려오는 배신감에 어찌할방도를 몰랐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하네요. 인간이 아니라 제 마음에 국한된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알고보면 그 돈이 내 돈도 아닌데.. '당첨금 수령하면 연락하마' 이 한마디의 충격이 되게 커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 친구와는 영영 못보겠구나. 라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갑자기 연락이 닿았습니다.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가 뜨길래 스팸인줄 알고 몇번이나 지나쳤습니다. 다음날에도 같은 번호로 전화가 오길래 '누가 핸드폰 바꾸고 연락처 변경되었다고 전화하나부나' 라는 생각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바로 그 친구였습니다.
"나다, 오랜만이지... 나 여기 xx다 나올래?"
저는 황급히 뛰어 나갔죠. 당첨금 6천여 만원을 받은 로또 당첨자를 제 눈으로 확인하는 날이기도 하고, 4년간 연락이 끊긴 친구의 모습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했죠. 거의 반반의 느낌이었습니다.
PC방에가서 친구를 찾으려는데 친구가 없는겁니다. 두번을 돌며 두리번거리며 찾아봤으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근데 구석에서 제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드는 손님이 보입니다. 그 친구의 눈을 보는 순간 한눈에 친구임을 알아봤죠. 외모는 너무 헬쓱해져 있었습니다. 통통한 외모는 온데 간데 없고 광대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말라있었네요.
저녁도 먹을겸 근처에 손님없는 식당을 찾았습니다. 지금 저에게 필요한건 조용한 장소일뿐 물어보고 싶은게 너무 많았으니까요. 텅빈 식당에 자리를 잡은 후 친구에게 과거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당첨금 수령후 세상이 적이 된것 같았다.
그당시 2등 당첨금으로 받은 돈은 6천여 만원. 대학교 갓 졸업한 사회 새내기에게는 큰돈입니다. 그 친구는 그 돈을 은행에서 받아 나오는 순간 아무도 믿을수 없게 되었답니다. 누가 내 뒤통수를 쳐서 내 주머니를 뒤지지나 않을까? 오토바이소리라도 들리면 자신을 향해 오나 안오나 자동으로 두리번 거리기도 하고... 이런저런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에게 연락안한 이유가 있었네요. 당첨확인한 첫 날 저에게 보낸 문자때문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저 뿐이었으니까요. 저도 믿을사람이 못되었던 거죠.
대학 졸업후 변변한 직장없이 지내오다가 로또2등의 당첨으로 인해 4년의 허송세월을 보낸 그 친구가 가엽기도 하고,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한듯 보였습니다. 일말의 배신감을 느꼈던 제 모습이 초라해 보일정도로 미안하더라구요.
버리지 못하는 미련 '하나만 더 맞었더라면..'
놀랍게도 그 친구는 아직도 로또의 환상에 살고 있었습니다. 구직활동을 접고 각종 로또관련카페를 다니면서 당첨 번호조합, 경험담등을 읽으면서 1등이 되지 못한 아쉬움을 식혔다고 합니다. 아직까지도 번호 하나만 더 맞았으면 수십억의 당첨금을 타는건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구요. 벌써 4년전 일인데 그게 아직도 생각이 나냐? 하고 되묻자.. 안당해본 사람은 모른다며 로또라는 종이 한장이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꿔주리리 확신을 하는 눈치였습니다. 나름대로 로또당첨번호 조합에 대한 강의를 한시간 정도 들어야만 했습니다. 무슨말을 듣는건지 기분이 멍~ 해지더라구요.
그 친구는 결국 당첨금의 반을 다시 로또를 사는 악순환을 겪게 되었죠. 그런데 몇년간 당첨번호를 공부한 본인도 3천만원을 한달정도 로또구입에 사용했으면서도 당첨금은 고작 12만 5천원 정도였습니다. 5천원짜리만 수두룩하게 당첨이 되었던 것이었던 거죠.
대학졸업후 직장을 구했어야 할 나이에 5년이 지난 지금도 로또의 환상속에 빠져서 아직도 로또를 구입하고 있습니다. 저번주 당첨금은 얼마였네, 무슨 모형이 당첨숫자에 근접했네, 등등...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저러고 있는 친구는 예전에 제가 알고 있던 그런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이 후로 지금까지 그 친구에게는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간간히 메신저로 안부만 물을뿐.. 너무 달라진 그 친구의 모습이 어색해 보이고, 저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듯한 느낌은 지울수가 없네요.
물론 저도 매주는 아니더라도 한달에 한두번은 로또를 사고 있습니다. 가끔 사는게 힘들때면 '나만의 1등 당첨 스토리'를 짜기도 하구요. 물론 답은 안나오는 스토리이지만요. 그 친구를 만난이후 로또는 사되 당첨 확인은 안하는 이상한 습관이 생기더라구요. 로또를 살때면 마음은 매우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 지는듯 하지만, 당첨금 확인은 섣불리 못하겠습니다. 막상 눈앞에 수십억, 수천만원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하지? 라는 물음이 자꾸 머리속을 맴도네요.
과연 로또가 인생을 역전시켜서 승리자로 만들어주는지, 패배자로 만들어 주는지...
[이 글은 친구의 허락하에 올리는 글이구요. 중간중간 장소나 지명은 삭제했습니다. - 좋은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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