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생명의 말씀

“당신의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십니까?”

아진(서울) 2007. 5. 6. 09:08

2007년 5월 6일 일요일

"그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마태복음 20:20-22)    하찮은 행동이라도 자식이 뭔가 조금 잘 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부모의 마음은 예외가 없을 것입니다. 자식 잘 되는 것을 위해서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것이 대다수 부모들의 심정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자기 아들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보다는 예수님 덕분에 영광을 누리기를 바랐습니다. 그것도 다른 제자들보다 훨씬 나은 자리에 오르기를 원했습니다. 이 여인의 생각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바로 그 모습이 대다수 부모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자녀보다 먼저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가 받을 영광보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녀가 받을 고난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가 잘 되는 것을 기뻐하면서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지, 이웃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을 것인지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무조건 편하게만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으로 자녀를 위하는 길인지, 혹시 자녀들의 성격이나 행동을 망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18세기 중반에 퀘이커 교도인 존 울먼은 미국의 퀘이커 교도들이 소유한 노예를 해방시키자고 30여 년 동안이나 직접 돌아다니며 설득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논하기 10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울먼은 설득의 과정에서 아주 간단한 질문 하나만을 던졌을 뿐입니다. “당신의 자녀에게 이런 현실을 어떻게 이해시키시렵니까?자녀들 앞에 떳떳한 삶을 살도록, 하나님 앞의 청지기 의식으로 부모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식이 저의 소유인 것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의 아들딸을 주님의 뜻에 따라 양육하게 하옵소서. 방선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