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속담에 이런말이 있습니다.
“햇빛만 쏟아지는 곳은 사막이 된다.”
이것은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진리 입니다.
비가 와야 합니다.
검은구름이 하늘을 뒤덥고 비가 쏟아질때 생명의 환희가 일어납니다.
눈물이 없는 인생은 사막과 같습니다.
예수를 믿고나서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울어 본 그사람이 차원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입니다.
애통이 우리를 신앙의 본질로 향하게 합니다.
눈물이 고인 눈에 십자가의 주님이 보입니다.
젖은 눈에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애통하는 심령 속에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그리스도의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의 신앙은 눈물을 먹고 자랍니다.
우리의 인격은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 하면서 성숙합니다.
신앙생활의 밑바닥에는 눈물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애통을 모르는 신앙은 천박한 신앙 입니다.
“애통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 하십시오.
오늘날 한국교회는 뻔뻔스러워진 것 같아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죄짓는 것을 대수럽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회안에 너무나 많습니다. 회개 기도랍시고 몇 마디 말로 때우고는 죄가 다 용서 받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슴에 진정으로 회개하는 심령이 자리잡고 있지 않습니다.
과연 그런 기도를 들으시고 죄를 깨끗하게 해주실지 모두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성당 앞에 붙인 항의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신앙인의 삶이란 끊임없이 회개와 참회를 하는 것이다.”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 이기에,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에,
성령을 모시고 사는 구별된 사람 이기에,
우리는 늘 눈물이 필요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씻어내는 눈물 입니다.
예수를 가까이 모시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추악함을 더 잘보게 됩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심령을 더 많이 갖게 됩니다.
예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애통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애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몰라서 애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거룩하신 임재를 가까이서 느끼기 때문에 애통하고,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영광의 빛 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노출되는 자신을 볼 때마다 드러나는 그 악함 때문에 탄식하는 것 입니다.
통회하고 자기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시고, 그에게 사유의 은총, 평안의 은총, 기쁨의 은총, 만족의 은총을 주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위로 입니다.
오늘날 이땅의 문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울지않고, 너무 뻔뻔스럽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놓고 애통하고,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 눈물 흘리며 기도하며,
민족의 죄를 짊어지고,
예수 안 믿는 이웃의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애통하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에 놀라운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이 살고, 이 나라가 살 수 있습니다.
- 옥한흠 ‘빈마음 가득한 행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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