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뉴스 들었어요? 노통이 자살했어. 자기 집 뒷산에 올라가서….”
“뭐라고?”
순간적으로 오지 말아야 할 상황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금품수수 의혹을 수사 중이었다. 결국 수사 압박을 견디지 못한 노 전 대통령이 비극적 선택을 한 것이다. 가뜩이나 전직 대통령들의 말로(末路)가 좋지 않았는데, 그중 최악의 케이스가 추가된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그러나 한국적 정서로 볼 때 그동안 쏟아졌던 의혹이나 비판은 도리어 동정과 애도의 물결로 바뀔 것이다. 새삼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실감 났다. 검찰은 불과 1년 전까지 모신 전직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예우를 갖추지 않았고 사실상 ‘흠집 내기’ 수사를 하고 있었다.
‘사고는 검찰이 쳤다. 그러나 그 대가는 고스란히 현 정권이 지겠구나.’
2009년 5월 23일 아침 풍경이었다.
나는 노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묘한 인연이 있다.
밤샘 취재로 검찰의 법 절차 무시 확인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한 뒤 온 국민이 분노했다. 2월 7일 부산에서도 국민 추도회가 열렸는데 경찰은 주최 측 인사들을 대거 연행했다. 2월 9일 저녁으로 기억되는데, 인권변호사 사무실에서 제보가 들어왔다.
“부산에 노무현이란 변호사가 있는데 검찰이 오늘 구속시킨다고 합니다.”
당시 법조 출입기자였던 나는 저녁 늦게 서소문 대검청사(현 서울시 별관 건물)에 들러 10층 공안부 사무실로 올라갔다. 경비 전화를 슬며시 집어 들고 부산지검 당직실에 전화했다.
“노무현 변호사 영장 발부됐어요?”
“어…. 그게 좀 문제가 생겨서. 담당 판사가 기각을 하는 바람에 다시 청구했습니다.”
나를 대검 직원으로 잘못 안 부산지검 당직자는 순순히 설명을 했다.
“이미 보고드린 것인데…. 오늘 꼭 구속시켜야 된다며 검사님들이 다른 판사님을 찾아갔고, 그분도 거절하니까 아예 수석부장판사 댁으로 갔습니다.”
순간 상황이 특이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통상 영장이 기각되면 피의자는 바로 석방돼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법 절차를 무시하고 있었다.
회사로 돌아와 새벽까지 전화통을 붙들고 취재했다. 당초 영장이 H판사에 의해 기각되자 검찰은 이후 3명의 법원 간부를 차례로 찾아가 발부를 요청하다 결국 거절당했다. 검찰 사상 전무후무한 하룻밤 4번 영장청구사건은 그렇게 취재됐다.
이미 새벽 기사 마감시간은 지나갔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박종철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증폭시키려면 어젯밤 검찰의 ‘일탈행위’가 즉시 알려져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 석간에 보도돼야 한다! 마음 같아선 하루 뒤 내가 몸담은 조간신문에 ‘특종(特種)’으로 내보내고 싶지만 취재를 알아챈 권력기관의 보도 통제로 아예 못 나갈 가능성이 많았다.
이후 나는 이 사건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본 동료 기자(현 한겨레신문 간부)가 2009년 노 대통령 자살 후 쓴 칼럼에서 취재 경위를 밝혔다.
훗날 문재인 의원은 2012년 발간한 회고록 『운명』에서 이 사건을 자세히 설명하고 “그 사건으로 노 변호사는 단숨에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했다.
정권 바뀌자 노무현 향한 검찰의 칼끝
그때부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젊은 정치 스타’로 등장한 노무현은 88년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청문회 스타’를 거쳐 제15대 의원,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하고 2002년 12월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취임 2개월여가 지난 2003년 5월 1일 노동절날 노 대통령의 오른팔 격인 문재인 민정수석과 저녁을 하게 됐다. 주간지 편집장단과 자리였다. 나는 당시 진행 중이던 화물연대의 불법 파업에 대한 정부의 의견을 물었다.
문 수석의 논리가 묘했다.
“역대 정부는 민(民)에 대해 불법적 행동을 많이 자행했습니다. 이 때문에 노동계의 요구가 무리 있더라도 참고 인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운영은 관용이 아니라 원칙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는 일국의 사법권과 법 질서를 수호해야 하는 청와대 민정수석보다는 대한변협 인권위원장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두 시간여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문 수석이 비록 선한 큰 눈을 가지고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현대사를 결코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마도 그 생각은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민주 시스템과 절차에 의해 정권을 잡았음에도 여전히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나라 상황이 어려워질 수도 있겠구나….’
그로부터 5년 뒤인 2008년 초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 그해 말 검찰의 칼끝은 노 전 대통령에게 향했다. 이듬해 봄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측이 박연차(태광실업 회장)씨로부터 대통령 재직 중 10억원 상당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고 공개 소환 조사했다. 이와 함께 유학 간 아들·딸·조카사위 등 일가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전방위적 조사가 전개됐다.
그해 5월 22일 금요일 저녁 나는 청와대 동료들과 식사를 했다. 내가 문화체육관광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 과거 몸담았던 민정수석실 식구들과 오랜만에 만난 것이다. 화제는 단연 노 전 대통령에게 쏠렸다. 청와대에서 검찰 담당 부서가 민정수석실이라 넌지시 물어봤다.
“왜 검찰이 그래? 기소도 하지 않고 어정쩡한 수사를 계속하면서… 너무 한 것 아냐?”
솔직히 나는 검찰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방식이 마음에 걸렸다. YS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역사 바로 세우기’란 명목하에 감옥에 보냈지만 결국 국정 부담으로 부메랑을 맞았다. 임기 말 아들이 구속되고 외환위기를 맞는 치욕을 당했다.
“검찰이 양쪽 다 잡으려고 합니다.”
“양쪽 다라니?”
“과거 권력 노통과 현재 권력 모두 말입니다.”
검찰이 노통 쪽과 함께 MB의 대학 친구인 천신일씨 수사도 하고 있으며 나중에는 칼끝이 이상득 의원으로 향할 것이라는 얘기였다(실제 그렇게 됐다).
“뭐야. 그러면 이 나라가 검찰 공화국이란 말이야. 검찰이 상지상(上至上)인…, 도대체 민정수석실은 뭐해?”
“지금 검찰이 청와대 말을 듣습니까?”
그런 대화를 주고받고 귀가한 다음 날 아침 나는 노 전 대통령 자살 비보(悲報)를 전해 들어야만 했다.
용서는 남이 아니라 나 자신 위한 일
노무현은 비극적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검찰 조사에서 나온 정도의 금품수수 의혹 때문에 그랬는가? 아니면 무리한 수사에 대한 격한 반발인가? 또는 우리가 모르는 대형 비리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노통은 도전적이고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다. 뒤에서 음험하게 행동하거나 터무니없는 공격에 굴복할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노무현은 평소 강한 정의감과 개혁의지를 나타냈다. 대통령 시절에도 그의 가치관에 맞지 않으면 여과 없이 비판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못 참고 비판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집권기간 내내 적지 않은 갈등과 대립이 있었다.
당시 그는 스스로 정의(正義)롭다고 여긴 것 같았다. 사실 인간은 누구도 정의롭지 못한 데 말이다. 자신을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을 ‘불의(不義)’로 인식할 수 있다. 그들의 실수나 잘못을 지나치지 못하고, 가차 없는 비판과 적의를 표출할 수 있다. 어떤 대기업 사장은 그의 말에 충격을 받고 투신자살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평소 비판하고 불의스럽게 여겼던 것과 비슷한 모습을 자신이나 가족에게서 발견했다면 어땠을까. 어느 날 자신도 정의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오는 당혹감과 충격감은 어땠을까…. 그는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의 죽음을 보면서 다윗(King David, ?~BC 961)이 생각났다. 그는 용감한 장군이요, 훌륭한 지도자였지만 그런 그도 일생일대 큰 죄를 저지른다. 부하 장군의 아내(밧세바)를 탐한 나머지 그 장군을 사지에 빠뜨려 죽게 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는다.
이 스토리만 보면 다윗은 대표적인 패륜아로 취급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용서받고 왕으로서 천수를 누리고 갔다. 구약성서는 물론 역사상 유대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영웅이 다윗이다.
유대인들은 그가 진심으로 참회했고 공(功)이 워낙 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적 측면에서 볼 때 다윗은 평생 관용(寬容)과 용서(容恕)의 사람이었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왕(王)도, 자신을 반역해 쿠데타를 일으킨 친아들도 용서했다. 결국 그가 평소 행한 용서가 결정적 순간에 그를 ‘용서’해 준 것이 아닐까.
이 고사(故事)는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용과 용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인간은 누구나 허물이 있다. 죄를 짓는다. 그러나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포용하고 용서해야 한다. 물론 용서는 때로 엄청난 인내와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사실, 용서는 남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상처 입은 과거(過去)에 대한 치유요, 예측 불가한 미래(未來)에 대한 일종의 ‘보험’이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아쉬움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함영준 조선일보 사회부장·국제부장 등을 역임하고 국민대 겸임교수를 거쳐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비서관,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저서로 『마흔이 내게 준 선물』 등이 있다.
함영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전무 jmedia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