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정치와 사회

'줄·푸·세' 했더니…대기업·부자만 배불렸다

아진(서울) 2011. 12. 27. 13:15

 

'줄·푸·세' 했더니…대기업·부자만 배불렸다
노컷뉴스|
입력 2011.12.27 05:03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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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장규석 기자]

남편과 함께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김현숙(35.여)씨는 연말인 26일,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 도매상에서 150만 원 어치를 샀는데도 스타렉스 짐칸이 안 찼다. 2년 전만 해도 1백만 원을 갖고 가면 한 차 가득 물건을 실어왔는데 물가가 올라 장사는 안 되고, 내 집 마련의 꿈도 더 멀어졌다. 이런 와중에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폐지가 발표됐다. 김 씨는 "우리처럼 집이 없거나 집 한 채 겨우 있는 서민들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는 정책"이라며 "잘사는 사람들만 잘살게 해 준다"고 푸념했다.

대기업 과장인 이현우(37)씨의 회사는 해마다 수출 기록을 경신했다. 하지만 월급은 쥐꼬리만큼 올랐다. 자녀는 자꾸 커가고, 물가나 공과금은 치솟아 쓸 수 있는 돈은 더 줄었다. 회사는 날로 커지는데 그는 점점 작아진다. 이 씨는 "중산층은 실직 등 경제활동에 타격이 생겨도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계층이라고 배웠는데 저희 가정은 월급이 끊기면 한두 달 버티기 힘들다"며 "중산층은 아닌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MB정부 4년이 지난 2011년 겨울, 서민들의 목소리는 우울하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서 우리 국민 절반에 가까운 45%가 '나는 하층민'이라고 대답했다. 2년 전 조사 때 보다 2.9% 더 늘었다. 부채가 늘어났다는 가구(27.3%)가 줄었다는 가구(10.8%)보다 많았다. "경제를 살려 서민과 중산층을 잘살게 해 주겠다"던 이 대통령의 공약은 어디로 갔나.

◈ "줄·푸·세로 서민 중산층 잘살게 해준다"

경제 살리겠다며 내놨던 핵심 공약이 '줄·푸·세'다. 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바로 세운다는 뜻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상대였던 박근혜 대표의 공약을 가져왔다. 세금을 줄이면 쓸 수 있는 소득이 늘어나 소비와 투자가 증가한다. 아울러 규제가 풀리면 기업들이 투자를 늘려 경제가 성장하고, 고용도 함께 늘어난다는 논리다. 이를 두고 '트리클 다운' 또는 '낙수효과'라고 불렀다. 위(부자, 기업)에서 흘러내린 물이 아래(서민)까지 적신다는 것이다.

MB정부는 임기 첫 해에 종부세와 소득세 감면,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 폐지, 법인세율 인하, 임시투자세액 공제 확대 등 각종 감세정책을 발표했다. 감세규모는 임기 5년 동안 총 21조 3천억 원에 달했다. 당시 강만수 장관이 이끌던 기획재정부는 "감세정책을 통해 투자가 7% 늘고 소비도 0.5% 늘어나게 되며 18만개의 일자리가 더 생긴다"고 홍보했다.

규제완화에도 적극 나섰다. 출자총액 제한제도와 지주회사에 대한 부채비율 제한제도를 폐지하고, 비계열회사 주식보유한도 5%도 폐지했다. 또 금산분리 완화를 추진해 2009년에 비금융 주력자의 은행주식 보유한도를 4%에서 9%로 확대했다.

"나는 실물을 아는 대통령이다. 기업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장담처럼 이제 감세와 규제완화로 기업투자와 민간소비가 늘어나기를 기다릴 차례였다.

◈ 줄·푸·세 했더니…이론과 현실의 괴리

그러나 취임 초인 2008년 기업의 설비투자는 전년동기대비 -1%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민간소비는 1.3%, 취업자 수는 14만5천명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듬해인 2009년에는 설비투자가 -9.8%로 급격히 위축됐다. 민간소비 증가율도 0%, 취업자 수는 7만2천 명이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감세와 규제완화는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2010년에는 설비투자가 25%로 급증하고, 민간소비도 4%대를 회복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설비투자는 4.3%, 민간소비는 2.5% 증가하는데 그쳤다.

MB정부 4년 동안 연평균 설비투자는 4.6%, 민간소비는 1.9%, 취업자는 19만8천 명 늘어났다. 참여정부 기간 동안 연평균 설비투자가 5%, 민간소비 2.8%, 취업자가 25만3천 명씩 증가한 것에 비해 저조한 수치다.

'트리클 다운'도 없었다.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피용자 보수)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노동소득 분배율은 참여정부 말(2007년) 61.1%였으나 2010년에는 59.2%로 낮아졌다. 노동소득이 줄고 대신 기업의 이윤과 재산으로 돈 버는 사람들의 소득이 늘었다.

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배율은 2007년 7.09에서 2010년 7.74로 상승했다. 부자의 소득은 늘고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은 줄었다. 또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상대적 빈곤율도 2007년 17.3%에서 2010년 18%까지 높아졌다. 중위소득 아래로 처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 "고환율 정책, 서민 주머니에서 빼앗아 수출기업에 준 셈"

결과적으로 '줄·푸·세'는 실패했다. 한밭대 조복현 교수(경제학)는 26일,"대기업 중심의 수출기업들이 경기 부양을 선도하도록 규제완화와 감세 정책들이 추진됐으나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에는 맞지 않는 정책이었다"고 평가했다. 인구 5천만 명을 초과하는 강대국들의 경우 선진국 진입단계에서 수출규모를 줄이고 내수를 확대해 투자와 수요를 증대시켜왔다는 것이다.

2007년 현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인구 5천만 명 이상 강대국의 GDP 대비 수출비중은 15.4%에 불과했다. 인구 1천만 명에서 5천만 명 사이 강중국의 수출비중도 43.6%에 머물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GDP대비 수출비중은 지난 2분기에 사상최대인 52.7%를 기록하는 등 지나치게 수출에 의존한 경제정책을 펴왔다.

대기업, 수출기업 중심의 지원은 투자활성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2008년에서 2010년까지 대기업의 매출액은 12.62% 증가한 반면 유형자산 증가율은 9.67%에 불과했다. 중소기업 매출이 11.64% 증가에 그쳤지만 유형자산이 11.83% 늘어난 것과 비교된다. 대기업이 돈은 많이 벌고 투자에는 인색했다는 것이다.

고용측면에서도 중소기업중앙회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중소기업의 종사자수 증가 기여율은 86.4%에 달했으나, 대기업은 13.6%에 불과했다. 고용증가를 위해서는 수출중심의 대기업보다는 내수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 중심의 성장전략을 채택했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수출주도의 경제성장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추진해 온 것이 급격한 물가상승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민대 조원희 교수(경제학)는 "수출실적을 높이기 위해 고환율 정책을 썼는데 이는 물가 상승을 불러와 한마디로 국민들 주머니에서 돈을 빼앗아 수출기업들에게 준 셈이 됐다"고 말했다.

MB정부 4년 동안 우리 경제의 체감온도는 참여정부 때보다 더 낮아졌다. 그나마 우군으로 여겼던 대기업마저 등을 돌렸다. 정부의 이익공유제에 반발해 지난 13일 경제단체장들이 집단으로 위원회에 불참했다. 국민의 기대를 안고 출항한 엠비노믹스는 민생도 못 잡고 기업에도 외면받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hahoi@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