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다 1년에 한 두번 명절에 부모 형제를 찾아 고향을 찾는 이들은 당시의 열악한 교통환경 때문에 귀향길이 지옥길이나 마찬가지였다.
60년대 대중교통이라고는 기차가 전부였으며 70년대들어서 고속버스가 생겨났으나 명절때마다 겪는 교동 대란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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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경인 철도에 처음 도입된 증기 기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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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가 석탄이었으며 장시간 타고나면 석탄가루가 날려 옷과 코구멍이 검게 그을리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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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수 많이 귀향객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며칠식 역광장에 노숙을하며 표를 구해야 하는 고향길은 저승길보다 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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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차를 놓치면 이번 명절엔 고향에 갈 수가 없다.
객실 통로가 빽빽히 막히면 필사적으로 창문으로 기어올라 타기도했으며 객실 선반위까지 사람이 올라가 자리를 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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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혹시나 내 차례에 표가 매진 되지 않을까 조바심에 애 간장은 녹아내리고..... 서울 부산간 완행열차 12~14시간이나 걸리는 머나 먼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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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인파들이 며칠 전서부터 서울역앞에 자리를 잡고 표를 사기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했으며,이를 통제하는 경찰관들은 호루라기와 곤봉을 들고 질서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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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기차표 사기가 하늘의 별따기 였으며 암표상들의 대목이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근로자 한달 봉급을 털어 몇십배의 돈을 주고 표를 구하는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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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새통에 소매치기를 당해 고향엘 가지못하고 발길을 돌려야하는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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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들의 통제에 의해 질서 정현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소지품이 간단하다, 몸둥아리 하나 끼여 타기도 힘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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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애써도 단 시간에 표가 매진되어 고향엘 가지 못하는 이들도 부지기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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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당일날 새벽부터 혹시나 기차를 탈 수 있지안나 싶어 또 모여들고 밤샘을 한 이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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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몰려드는 귀향객들중 표를 구하지 못해 무임승차를 하는이도 있어 객차문앞에서 경찰관이 검표를 하기도 했다.
노약자들은 힘에 부처 뒤로 밀리고 또 밀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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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회사에서는 사전에 버스를 전세내어 사원들을 귀향길 목적지 까지 대려다 주는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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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터미널에도 수 많은 귀향객이몰렸으며,관리자들도 움직일 수 가 없어서 먼 발치의 사람들은 긴 장대로 이용하여 통제 하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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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차 발판에 까지 매달려 어떻게든 들어가 볼려고 몸부림을 친다
발디딜 틈이없어 객실 화장실안에도 4~5명식 신문지를 깔고 자리를 차지하다보니 용변을 볼 생각초차 힘들었으며 도착지까지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는것은 절대 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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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힘든 고향길이지만 명절이 아니면 부모 형제를 볼 수가 없어,
필사의 귀향 전쟁을 치루면서도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기쁜 마음에 피로함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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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도 마찬가지다, 복잡다고 이차를 안타면 다음차도 마찬가지 무조건 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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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으로 떠나는 이들도 많았다,트럭도으로 영업하는 이도 있었으며
같은 고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트럭 짐칸에 빽빽히 타고 고향 길을 재촉한다. 당시 인사 사고만 나지 않으면 경찰관 아저씨들도 눈감아 주는 훈훈한 정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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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 일본내 조총련소속 교포들이 고국을 방문한 획기적인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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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에는 풍성한 오곡백과가 수북이 솟아져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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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아니면 얻어 입을 수 없는 새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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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옷한벌.신발 한켤례 사주시면,,너무좋아 신발을 신고 새옷을 입고 잠을 자다 혼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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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장에는 우리 어머님들이 곡식을 이고지고 가서팔면, 그 돈을로 제수용품 사고 자식들 고무신 한켤례씩 사서 먼길을 걸어서 오시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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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백화점이 먼지도 잘 모르던 때였습니다 시장이라하면 재래시장이 최고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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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식구가 동라가며 떡 방아간에서 앞에서 하루 종일 차례 올때만 기다리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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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에 사라지고 있는 널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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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아침이면 골목길에 아이들이 모여 새옷과 신발 자랑 신바람나는 일이었습니다. 고무신도 한켤례 못얻어신은 아이들을 먼 발치 골목에 숨서서 빼꼼히 처다보며 무척 무러워 하던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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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산업발전의 견인차 혁활을한 디젤 열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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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년자료) 이따까지만 해도 승용차가 귀한 시대라 버스를 많이이용했지요. 회사에서 제공한 버스에 고향길을 재촉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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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자료) 이때까지도 재래시장은 늘 북새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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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자료) 서울역 앞에서 표를 사기 위해 노숙하는 모습입니다. 이때부터 조금씩 승용차 활부 시대가 열리기 시작 하여 오늘에 자동차 대국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귀향길은 참으로 어려웠으며 온종일 타고가서 목적지 도착하면 거의 초죽음이되고 또 도서지방 분들은 태풍이와서 악천 후로 배가뜨지 않아 고향 을 눈앞에 두고 눈물로 돌아서야만 했던 수많은 사연들을 안고 살아 오셨습니다.
타향살이 서러움을 않고 어머님 품속같은 고향을 찾아, 부모형제 친구들 만나, 훌훌 털어 다 버리고 다시금 삶에 터전으로 돌아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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