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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는 어떻게 괴물이 됐나.."군대 시절 살펴봐야"

아진(서울) 2019. 10. 3. 19:08

입력 2019.10.03. 15:30 수정 2019.10.03. 16:07

 
흉악범에게서 관찰되는 아동시절 학대·성불구 문제없어
전문가 "특별한 동기 없이 비뚤어진 성 관념 탓일 수도"

(수원=연합뉴스) 최종호 강영훈 기자 = "여자하고 성관계해 본 적이 없어요?"

화성연쇄살인 용의자 이춘재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 '추격자'에서 경찰에 붙잡힌 범인 '지영민'에게 프로파일러가 던진 질문이다.

프로파일러는 범행동기를 확인하고자 "당신이 성불구인가 해서 묻는다", "너 같은 놈들이 대개 성불구다"라며 지영민을 압박했고 그는 결국 이전까지 유지하던 평정심을 잃고 프로파일러에게 달려든다.

영화에서처럼 연쇄살인범을 비롯한 흉악범 중 성불구가 범행동기인 경우는 실재한다. 성불구 말고도 아동시절 학대를 당했다거나 성적 학대 피해 또한 이들에게서 종종 관찰되는 범행동기 또는 특징이다.

옛 소련 시절인 1978∼1990년 52명의 소년과 소녀, 매춘부 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희대의 연쇄 살인마 안드레이 치카틸로는 첫 성관계에서 실패한 뒤 자신을 성불구로 여기고 범행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3년 9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노인과 부녀자 등 21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확정받고 수감 중인 유영철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지병으로 숨지기 전까지 아버지로부터 심한 폭행을 비롯한 학대를 반복적으로 당했다.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수도권에서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혀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남규는 아동시절 학대와 성적 학대를 모두 당했다.

그는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며 초등학교 5학년 때 성인 남성에게 끌려가 변태적인 성폭행까지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 숫자로 본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 (서울=연합뉴스) 김영은 기자 =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56) 씨가 화성사건을 포함해 모두 14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고 경찰이 2일 공식 확인했다. 이 씨는 살인 외에도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0eun@yna.co.kr

물론 이러한 경험을 겪었거나 비슷한 상황에 부닥쳤다고 해서 모두 범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고도 범죄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지만, 성불구와 아동시절 성적 학대 등은 분명 많은 흉악범에게서 나타나는 문제로 꼽힌다.

그러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 씨는 적어도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가운데 어느 하나 해당 사항이 없다.

우선 화성사건을 비롯해 이 씨가 저지른 14건의 살인사건 중에는 성폭행 흔적이 남은 사건이 대부분이다. 그는 살인사건 외에도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이 씨가 성불구는 아닌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그가 유년시절 학대를 당했다는 단서도 없다.

이 씨의 어머니는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회사 잘 다녔고 군대 다녀왔으며 엄마 농사짓는 일도 도와줬다"며 "아들이 불량하거나 나쁜 애라면 모르겠는데 그런 애가 아니다"라고 아들이 연쇄살인범일 리 없다는 주장을 했다.

그의 아들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적어도 이 씨가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당하지는 않았다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이 씨의 아버지는 수년 전 지병으로 사망했는데 폭력적이거나 가정 폭력을 일삼았다는 주변 증언은 없었다.

다만, 이 씨가 정남규처럼 성적 학대를 당한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화성사건 비공개 브리핑 시작하는 반기수 수사본부장 (수원=연합뉴스) 권준우 기자 =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5층 회의실에서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이 비공개 브리핑에 앞서 취재진에 인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화성사건 유력 용의자 이춘재(56) 씨가 9차례 연쇄살인을 포함해 모두 14건의 살인과 30여 건의 강간 및 강간미수 범행을 자백했다고 밝혔다. 2019.10.2 stop@yna.co.kr

이 때문에 이 씨의 범행동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군대 시절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 씨가 가정폭력 피해를 보지 않았다면 군대 시절 무슨 일이 있었을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며 "특히 군 전역 후 범죄가 시작된 것을 보면 군대에서 동성 간 성폭행을 당했다거나 왕따를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애초부터 별다른 동기 없이 잘못된 성 관념 때문에 범행을 벌였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특별히 트라우마나 동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비뚤어진 성 관념이 문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아마 성 매수부터 시작했을 수 있는데 그게 성폭행으로, 또 살인으로 점점 진행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범죄의 강도가 심해졌는데도 자신이 잡히지 않는다는 데에 굉장한 의미부여를 하고 그러면서 해이해졌을 것"이라며 "그래서 대담하게 흉기를 들고 남의 집까지 쫓아 들어가 강도미수 범행을 하다가 붙잡히자 그다음부터는 이런 수법을 사용하지 않는 등 스스로 범행 수법을 진화시키고 숙련도를 늘려갔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픽] 화성 연쇄살인 용의자 이춘재 범행 일지 (서울=연합뉴스) 김영은 기자 =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56) 씨가 화성사건을 포함해 모두 14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고 경찰이 2일 공식 확인했다. 이 씨는 살인 외에도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0eun@yna.co.kr

이 씨를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이 씨의 범행동기에 대해 수사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이 씨는 화성사건 이후인 1994년 1월 충북 청주 자택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zorb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