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70)이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KTX 승무원 재판’ 등을 미끼로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에 대해 KTX 해고 승무원들이 29일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KTX 열차승무지부 소속 해고승무원들과 KTX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그리고 청와대와 거래한 자들은 사법정의를 쓰레기통에 내던졌다”며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기자회견 직후 참가자들은 대법원 본관 진입을 시도했다. 해고승무원들과 대책위 관계자 일부는 법정 경위 10여명과 몸싸움을 벌이며 대법정 안까지 뛰어들어갔다. 대법정에 무단으로 진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부는 대법정 밖에서 “이곳에서 양승태 전 대법관과 재판부가 엉터리 판결을 내렸다” “그 판결로 사람이 죽었다”고 말했다. 대법정에서 나온 KTX해고노동자들은 법정 앞에 앉아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KTX해고노동자들은 “양승태가 책임자로 있던 대법원은 고등법원까지 계속 승소해온 KTX 승무원 관련 판결을 이유없이 뒤집어 10년 넘게 길거리를 헤매어 온 해고 승무원들을 절망의 나락에 빠뜨렸다. 그로 인해 승무원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다. 누가 이 억울한 목숨과 승무원들의 불행을 책임질 수 있나”라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 근무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법원행정처 심의관 2명 등의 컴퓨터에 들어있는 파일을 조사했다. 조사단이 해당 파일에서 찾아내 공개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의 효과적 협상 추진전략’ 문건을 보면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수행”한다고 명시됐다.
문건에는 또 “그동안 사법부가 VIP(대통령)와 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이라는 문구와 함께 KTX 승무원 사건, 통상임금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을 언급됐다.
이날 ‘김 대법원장 면담요청서’를 들고 대법정에 들어간 ‘해고승무원’ 김승하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요청서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본관에 들어왔는데 들어오니 더 들어가야겠더라. (대법정인줄도 모르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면서 “대법정에 들어갔더니 대법원에서 절차를 지켜야 한다고 하더라. 절차와 법규를 지켜서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런 판결을 내렸나? 법원은 법을 지켜라, 절차를 지켜라 하는데 그 사람들이야말로 법을 지키고 절차를 지켰으면 우리가 여기에 올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KTX해고승무원들은 이날 오후 2시15분쯤 대법원 본관에서 나왔다. 대법원은 김 대법원장의 비서실장인 김환수 부장판사와 KTX 해고노동자들이 오는 30일 대법원에서 면담을 진행키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