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의 성찰/안타까운 사연들

경주 최부잣집 울린 최태민 일가

아진(서울) 2017. 1. 31. 16:52
채널A|입력 2017.01.31 07:32|수정 2017.01.31 07:32
3백년 부를 이어온 경주 최부잣집은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훈으로 삼으며 부유층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했던 명문가문입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전 재산을 사회에 기증한 최부잣집 마저 최태민 일가와 악연을 맺은 뒤 굴곡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임대료와 묘지 이장 독촉까지 받고 있는 후손들의 사연을 김지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경주 최씨 고택 / 경북 경주 교동)
일제시대 때까지 3백년 넘게 만석꾼으로 이름을 날린 경주 최씨 종가.

고택에는 지금도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하고,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는 가훈이 붙어 있습니다.

[최염(14대손) / 경주 최씨 종친회 명예회장]
"이웃이 못 살면 마음도 안 편하고 영원히 갈 수도 없다고 크게 깨우치신 것 같습니다."

[최준(12대손, 1884~1970)
12대손 최준 선생 때는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며 독립운동 자금줄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해방 직후, 최준 선생은 전 재산을 털어 영남대학의 전신인 대구대학을 설립했습니다. 당시 경주와 울주군에 산재해 있던 선산과 논밭, 그리고 고서 5천여 권과 종가집 건물까지 모두 기증했습니다.

[김지환 기자]
"경주 최씨 가문이 모여 살았던 교촌마을입니다. 현재 이 일대 약 6만 제곱미터의 땅은 모두 영남대학교가 가지고 있는데요. 보시는 것처럼 고택에는 영남대의 소유라는 것을 알리는 간판도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기부한 땅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씨의 의붓아들인 조순제 씨가 영남대 재단에 깊숙이 관여했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경주 선산은 13개 필지로 쪼개져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팔렸습니다. 최씨 가문은 땅이 차명거래됐다고 주장합니다.

[최창호 / 최부자 민족정신선양회 이사]
"한꺼번에 13사람 다 맞춰서 매매했다고 하기는 힘들지 않습니까?그거는 누군가 준비를 해서 넘길 사람 맞춰놓은 거겠죠."

이후 이 땅은 당시 50대 남성 차모 씨가 다시 사들였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차씨의 주소지는 서울 성북구의 한 빌라.

그러나 주민들 가운데 차씨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소재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영남대가 땅을 판 가격은 4억 원이었는데, 차씨가 지불한 금액은 15억 원이었습니다. 차액 11억 원은 어디로 갔을까?

[정지창 / 전 영남대 교수]
"영남대학 땅 팔아서 돈을 상당히 빼돌린 의심이 가는데 지금 수법을 그때부터 했어요. 돈 빼돌리고 하는 것 그때부터 시작해서…

최씨 가문은 영남대 자금관리를 하던 조순제 씨가 땅을 헐값에 넘기고 거액의 리베이트를 챙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최염(14대손) / 경주 최씨 종친회 명예회장]
"모든 걸 해서 최태민한테 바쳤는데 그것을 최태민이 죽을 때 조순제한테는 하나도 안 주고 최순실한테 다 준 겁니다."

최씨 가문의 땅이 최태민, 최순실 일가 재산의 종잣돈이 됐다는 것.

조순제 씨는 '관리하는 사람(최태민)이 있고, 심부름하는 사람(조순제)이 있지 않았겠냐'며 영남대 자금에 손을 댔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여 년 뒤. 최씨 후손 5가구는 지난 2014년 영남대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받았습니다. 남의 땅에 살고 있으니 임대료를 내라는 것.

[최성환(14대손)]
"60만 원 정도 내라고 했어요. 그래서 난 못 준다고 그랬는데 한 달 후에 와서는 담당자가 그러면 1/10만 내라고… "

땅과 집을 기증한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긴 커녕 오히려 세입자 취급을 한 겁니다. 곧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인 울주군 선산 역시 최씨 집안이 기증한 땅.

그런데 여기에도 얼마전 묘지를 이장하라는 촉구 팻말이 붙고 말았습니다.

[최창호 / 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이사]
"후손으로서는 잘해서 조상님들에게 누가 되지 않아야 하는데 쫓겨난 격이 되니까… "

경주 최부잣집 역시 지난해 9월 지진 피해를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최씨 집안 후손들을 더 아프게 한 건 무참히 짓밟힌 선조들의 고귀한 정신이었습니다.

채널A 뉴스 김지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