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최태민 "큰 영애께서.." 전화 돌려 재벌 돈 뜯는 게 일
백성호 입력 2016.11.04 02:32 수정 2016.11.04 06:45
신흥종교·이단 전문가 탁명환씨 생전에 쓴 최태민 숨겨진 이야기
이때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은 최태민의 거취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자세하게 보고했다. 가급적이면 접촉하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희망하는 방향으로 보고서가 작성됐다고 한다.
이즈음부터 최태민은 청와대를 무단출입하기 시작했다. 탁 소장은 “당시 중앙정보부에서는 최태민에 대한 의견이 엇갈려 있었다”고 했다. 탁 소장이 최태민의 정체를 밝히려고 하자 중앙정보부의 모 과장이 찾아와 “그 사건을 파헤치면 신상에 좋지 않다. 영애가 관련된 일이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신상에 유리하다”고 협박한 뒤 돌아갔다. 그래서 탁 소장은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중앙정보부의 다른 파트에서 찾아와 “최태민씨를 조사하게 됐으니 자료를 좀 넘겨달라”고 탁 소장에게 요청했다. 탁 소장은 거절했다. “언제는 재미없다고 협박하더니, 이제는 때려잡겠다고 하는 의도가 뭔가?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그따위 수사 방침을 어떻게 내가 믿겠는가”라고 반박했다. 대신 최태민(원자경)의 교리 책인 『영세계의 칙사론』을 건네주었다. 그 책에는 ‘최태민이 영세계의 칙사로서 한국에 파견된 대사와 같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탁 소장은 “(정권 내부에서도) 최태민에 대한 의견이 갈렸지만, 근혜양의 의견을 지지하는 편이 우세하여 최씨는 계속 득세했다”고 기록했다.
경호원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창군식이 거행됐다. 구국십자군은 최태민 총재와 박근혜 명예총재 등 임석상관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이후에도 최태민이 주최하는 대회에는 각급 기관장들은 물론 고위 공무원과 국회의원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손자에게 과자값 100만원 수표 쥐여줘”
탁 소장은 그 이유로 ‘큰 영애의 빠짐없는 참석’을 꼽았다. 탁 소장은 “그것이 후일 최태민씨가 도지사나 경찰국장에게 전화로 호통을 칠 정도로 세도를 부리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 구국십자군은 전국적으로 20만 명을 목표로 했다”고 했다. 최태민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목에 힘을 준 최태민은 항상 검정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다. 탁 소장은 “고려 말 괴승 신돈처럼 홀연히 나타난 최태민 총재는 구국선교단과 구국여성봉사단을 운영하면서 돈을 물 쓰듯 했다”고 밝혔다. 당시 최태민의 아들이 인천에 살고 있었다. 최태민은 집도 사주고 돈도 풍족하게 주었다고 한다. 가끔 손주들에게 과자 값이라고 쥐여 주는 돈이 100만원짜리 수표일 때가 있어 지켜본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탁 소장은 이 일화를 소개하며 “그 당시(70년대 중반) 100만원은 10년 지난 지금(88년)으로 친다면 1000만원도 족히 넘는다. 이것이 사람들이 과장해서 하는 말이라고 친다 하더라도 얼마나 돈을 물 쓰듯 하면서 살았으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최태민의 딸이 결혼을 했다. 결혼식장에는 경제계와 정부 관리 등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많은 하객이 몰렸다. 탁 소장은 “이것은 권력의 냄새만 피워도 쉬파리처럼 몰려드는 당시 권력형 종이호랑이의 단막극을 여실히 입증하는 생생한 표본”이라며 “최태민은 ‘구국’에는 구호뿐이지 사실은 축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는 사무실에 앉아서 재벌급 기업인들에게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것이 일과였다”고 증언했다.
그 대목을 탁 소장은 이렇게 표현했다. “항상 검은 안경을 끼고서 오만하게 앉아 재벌들에게 전화질을 하면서 꼭 근혜양을 팔았다.” 이어서 탁 소장은 “(최태민이) ‘명예총재인 영애께서 필요로 하는 일이다. 협조 부탁한다’고 하면 상대편에서 꼼짝 못했다”고 밝혔다.
최태민의 사냥감은 대기업뿐만 아니었다. 탁 소장은 최태민의 측근으로 있다가 탈퇴한 간부의 증언을 빌려 “최태민이 건설 관계 회사에도 전화를 걸거나 찾아갔다. 공사 계약을 따내는 일이나 납품 등을 알선하고 커미션을 받아 챙기는 수법으로 축재를 했다”고 밝혔다.
당시 최태민 주위에는 기독교 목회자들이 많이 몰렸다. 최태민 자신은 신학 교육을 받지 않은 ‘가짜 목사’였지만, 그의 주변에는 기성 교단에 소속된 ‘진짜 목사’가 꽤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나중에 소속 교단의 교단장까지 지낸 인물도 있다.
탁 소장은 그들의 명단을 일일이 기록했지만, 이름 석 자 중 가운데 글자는 ‘O(동그라미)’로 표기했다. 그러면서 탁 소장은 “비록 당사자들의 명예를 위해 성명을 밝히지 않으나 역사의 기록과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운 줄 알아야 하며, 하나님과 역사 앞에 권력의 시녀인 꼭두각시 놀음을 한 것은 회개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이 사건이 실제로 기독교 역사에 실명으로 기록될 때가 올 것이다”고 적었다.
“최씨 주변에 기성 교단 목사도 많아”
최태민은 자신을 찾아오는 목사들에게 “교인들을 통해 돈이 될 만한 건수를 물어오면 그것을 해결하고 돈을 받아 선교회 사업에 쓰겠다”고 말했다.
권력을 이용해 민원을 해결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식이다. 탁 소장은 “실제 김모 목사가 1번 타자로 교인들에 수소문해 건수를 물고 들어갔다. 최태민은 그걸 해결하려고 여기저기에 로비 활동을 했다.
그러나 만사가 그렇게 수월치만은 않은 법이다. 오히려 상대편에서 법적 소송을 걸고 나오자 불리해진 것을 알고 최태민은 재빨리 손을 뗐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김모 목사에게 떠넘겼다. 결국 김 목사는 구속됐다”고 했다.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강모 전도사가 욕을 하며 “이 X새끼야, 건수 물어오라고 할 때는 언제고 불리하니까 오히려 상대방을 충동질해 목사를 구속시켜 버려. 빨리 빼내지 않으면 재미없다”며 길길이 날뛰어도 최태민은 아무런 대꾸를 못했다고 한다. 그 후 강 전도사는 구국선교단을 탈퇴해 ‘최태민 타도’에 앞장섰다고 탁 소장은 전했다. 또 탁 소장은 “최태민은 돈이 되는 일이면 어디든지 개입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는 10·26 사건이 터졌다. 최태민에 대한 수사도 시작됐다. 당시 신촌과 청계천 호텔에 수사본부가 차려졌다. 그런데 최태민은 큰 영애를 ‘방패막이’로 삼았다. 탁 소장은 “수사본부에서 한 달간 수사를 했다. 거액의 행방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최태민은 예금통장 등 모든 걸 근혜양에게 책임을 돌리고 발뺌했다. 수사진은 대통령의 자녀에 대한 예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수사 결과도 발표하지 못하고 말았다”며 “최태민이 여기저기에 숨겨놓은 재산을 찾아내 국가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3대 국회에서 국정조사권이라도 발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탁명환 소장이 28년 전 『현대종교』에 최태민에 대해 쓴 글의 서두는 마치 ‘최순실 국정 농단 시국’을 겨냥한 것처럼 읽힌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누군가 정권무상(政權無常)이란 말을 한 적이 있다. 권력이란 무상한 것이요, 허무한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나가면 아무리 당대에 위세를 떨치고 나는 새라도 떨어뜨릴 듯싶던 권력도 쇠잔해 가게 마련이다.”
탁 소장은 “그런 무상한 정치 권력에 아부하고 야합하는 종이호랑이들”을 강하게 질타하며 ‘최태민의 정체’를 폭로했다.
정리=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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