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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누명 씌운 것도, 벗긴 것도..국과수 필적 감정

아진(서울) 2014. 2. 14. 06:44
누명 씌운 것도, 벗긴 것도..국과수 필적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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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씌운 것도, 벗긴 것도..국과수 필적 감정

한겨레 | 입력 2014.02.13 20:30 | 수정 2014.02.13 22:50
[한겨레][강기훈 23년만의 무죄] 유죄에서 무죄까지


재판부 "강씨-유서 필적 같다는


1991년 국과수 감정 믿을 수 없다"


전 국과수 직원 허위증언도 인정

유서대필 사건으로 강기훈씨에게 누명을 씌운 근거가 된 것도, 누명을 벗는 증거가 된 것도 모두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필적감정이었다.

강씨가 1991년 분신자살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써준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결정적인 근거는 "유서가 김기설씨의 필적과 다르고, 강씨의 필적과 같다"는 국과수 감정 결과였다. 하지만 강씨의 재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권기훈)는 13일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91년 국과수 감정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서 중 강씨의 필체와 같다고 지목된 글자의 특징은 김기설씨의 다른 글씨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으로 보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는 뜻이다. 재판부는 이어 "당시 감정은 유서 내용 중 '여지껏 효도를 해보지 못했지요'라는 글에서 '보'를 '오'로 잘못 읽었다. 유서의 'ㅆ'과 'ㅎ'자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강씨의 필적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당시 감정은 이에 대한 평가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감정인 김아무개씨가 혼자 감정을 했지만 4명이 공동심의한 것처럼 법정에서 허위증언한 점도 지적했다.

국과수가 '유서와 김기설씨의 필적이 다르다'고 감정한 부분도 잘못됐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김씨는 정자체와 흘림체를 함께 사용하지만 당시 국과수는 김씨가 정자체만 사용하는 것으로 속단하고 흘림체인 유서와 정자체인 김기설씨의 필적을 단순 비교해 필적감정의 일반 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일부러 필적이 다른 글을 비교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강씨 변호인이 김씨가 쓴 것으로 보이는 흘림체 글을 제출했지만 증거 가치가 없다며 외면했다.

2007년 김기설씨의 친구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김씨가 작성한 전대협 노트·낙서장을 제출하자 국과수는 다시 감정해 "전대협 노트와 유서의 필적이 같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진실화해위는 이를 토대로 "유서는 김기설씨가 쓴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고 강씨에 대한 재심을 권고했다.

2012년 10월 대법원은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다만 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는 그대로 믿을 수 없으니 심리를 더 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재심 재판에서 또다시 국과수의 감정이 이뤄져야 했다. 검찰은 전대협 노트·낙서장이 김씨가 쓴 게 아니라고 주장했고, 재판부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 국과수에 김씨의 평소 필적과 전대협 노트·낙서장이 동일한지 감정 의뢰했다. 세번째 감정이었다.

국과수는 지난해 12월 재판부에 "김씨의 평소 필적은 정자체이지만 전대협 노트·낙서장은 흘림체여서 감정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비교 가능한 부분을 찾아 감정한 결과, 김기설씨의 평소 필적과 전대협 노트·낙서장 필적에 7개의 유사점을 발견했다. 두 개가 동일 필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결과를 제출했다. 사실상 전대협 노트가 김씨가 쓴 게 맞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김씨의 분신자살 전후 행적, 전대협 노트·낙서장 등에 관한 2007년 국과수·사설감정인의 감정 결과, 이번 재판에서의 국과수 필적감정 결과, 유서의 내용과 형식 등을 종합해 보면 유서는 피고인이 아니라 김기설이 작성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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