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도 장갑 하나 사 줘. 응?" 나는 단칸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엄마를 조르고 있었고, 그런 나에게 엄마는 눈길 한 번 안 준채 부지런히 구슬들을 실에 꿰고 있었다.
"씨... 딴 애들은 토끼털 장갑도 있고 눈 올 때 신는 장화도 있는데.. 난 장갑이 없어서 눈싸움도 못한단 말이야. 애들이 나보고 집에 가서 엄마랑 같이 구슬이나 꿰래."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나왔다. 엄마의 재빠르던 손놀림이 갑자기 멈춰졌다. "누가 너더러 구술이나 꿰랬어?" "애들이 그러는데 엄마가 연탄 배달을 하도 많이 해서 내 얼굴이 까만 거래..."
사실 그런 놀림을 받은 적도 없었고 힘들게 밤낮 일하시는 엄마를 슬프게 할 생각도 없었다. 단지 오늘 점심시간에 눈싸움을 하다가 장갑이 없어서 손이 조금 시렸던 것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이거 끼고 학교 가거라."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나에게 엄마는 빨간색 벙어리장갑을 건네주었다. 장갑의 손등엔 하얀 털실로 작은 꽃모양까지 수놓아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장갑을 받아들고 학교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저만치서 연탄을 나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반가워 엄마에게 달려가 빨간 벙어리장갑을 낀 손으로 엄마의 목에 매달렸다.
"집에 가서 아랫목에 있는 밥 꺼내 먹거라." 내 얼굴을 만져 주는 엄마의 차가운 손. 다시 손에 끼우시던 엄마의 장갑을 보는 순간 나는 흠칫 놀랐다.
그 추운 겨울 날씨에 차디찬 연탄을 나르시면서 낡아빠져 구멍이 난, 얇은 고무장갑을 끼고 계셨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다. 겨울이면 연탄 공장에서 성탄절 선물로 고무장갑 안에 끼라고 배급해 주는 붉은 털장갑을 풀어 밤새 내 벙어리장갑을 짜 주셨다는 것을... 실이 얇아 이중으로 짜야 했기에 하룻밤 꼬박 새워야만 했다는 것을...
나는 손이 커져 손가락이 장갑 안에서 펴지지 않을 때까지 겨울마다 그 장갑을 끼고 또 끼었다.
그리고 결혼할 때 나는 내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었다. 또다시 겨울이 오고 있던 어느 날. 어디서 사 왔는지 뭉실뭉실한 털실 세 뭉치를 바구니에 담으며 아내가 넌지시 내게 말했다.
"올 겨울에는 어머님께 따뜻한 털스웨터 한 벌 짜드리려고요."
- 최은주*옮김 -
2010. 1.27. 새벽밭 편지 글이다.
이글을 보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두 남매를 두고 먼저간 며느리를 생각하며
자식 처럼 길렀던 나 였는 데......
제데로 모시지도 못했는 데 벌써 가신지 넘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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