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은혜로 누리는 한 말씀에 은혜를 주소서
약속이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약속에 언약서이다.
은혜로 은혜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신실함에 극치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어떻게 해볼수 없는 상황을
하나님은 좋은 기회로 삼으신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나의 방법과 다르며 차원도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방식을 내 수준으로 끌어 내려서는 안된다.
요셉은 억울함의 연속적인 삶을 살아 갔다.
형들에 의해서 팔려가는 억울함과 보디발 아내의 유혹과 모함으로 감옥에 가는 억울함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도약의 시간이였다.
고난과 억울함은 인생의 발판이 되고 디딤돌이 되었다.
지금 이시간도 하나님의 은혜는 흐르고 있고 하나님의 은혜는 현재 진행형이다.
고난속에서도 형통하는 것은 하나님이 도와 주시고 밀어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간 것은 권력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통로요,
감옥은 절대 권력자인 왕에게로 가는 지름길이였다.
은혜를 은혜로 누리는 자에게 더 큰 은혜가 임한다.
요셉은 이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이 은혜를 보았고 누리며 살았다.
요셉이 잘나고 똑똑해서 은혜를 누린것이 아니고 보디발의 눈에 요셉을 잘 볼 수 있게 하나님이 일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흘려 보내시는 은혜를 헛되히 보내지 않고
요셉은 성실한자의 모습으로 현실을 받아 드리면서 은혜를 은혜로 누렸다.
인간 보디발을 대 할 때에도 하나님께 하듯 신실함을 잊지 않고 순종함으로 자신이 처한 형편에 순응했다.
고난속에서 요셉은 자칫하면 형들을 원망하고 인생을 한탄하며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이 자리에 오게 된것도 은혜로 왔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다.
신앙인이라면 적어도 하나님의 은혜에 눈을 떠야 한다.
보디발 아내의 유혹 앞에서 요셉처럼 하나님의 뜻이 아닌 죄 된 것에는 단호히 거절을 해야 한다.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인생은 신앙도 삶도 내리막 길로 가게 되어있다.
죄악이 하나님과의 사이를 단절케(사59:2)하며 은혜의 통로를 막히게 한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인도 하시고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믿음으로 사는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자신이 잘나서 오늘날 내가 잘된것 처럼 성령의 역사를 조작해서는 안된다.
끈임없이 죄악과 싸우고 요셉처럼 성적 유혹에서 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순간의 생각 속에서라도 마음이 죄의 길로 작동하지 않도록 부단한 영적 전쟁을 해야 한다.
이것이 은혜안에서 사는 비결이다.
은혜의 단절은 무서운 것이다.
유혹하지 않았다는 보디발 아내의 것짓과 모함속에서도 하나님은 증인이 되셨다.
은혜안에 살려는 거룩한 몸부림이 요셉안에 있었다.
형통은 어려움과 시련을 만나지 않는것이 아니라
극복하도록 하나님이 도와 주시는 것이다.
은혜는 은혜로 통한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은혜를 은혜로 누리는 사람 요셉의 삶이 나의 삶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