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佛지리학자가 꼽은 한국 아파트, 주거집중 더 심화
1981년 주택건설총량서 단독주택 앞서
90년대 거치면서 선호주택유형 자리잡아
공적공간 사유화·폐쇄적 운영 비판 거세
획일적 디자인 벗어나고 단지 개방 추세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1990년 서울을 처음 찾은 푸른 눈의 학자는 거대한 아파트단지에 충격을 받았다. 아파트라는 건축물이 먼저 생겨난 유럽에서는 오히려 질이 낮은 주거형태에 꼽히고, 문화가 비슷한 동아시아권에서도 이처럼 대단지 아파트는 거의 없었다.
단순히 땅은 좁고 사람은 많다거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해 급속히 도시화가 진행됐다는 이유만으로는 한국의 대규모 아파트 현상을 명쾌히 설명할 수 없었다고 한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2007년 펴낸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에서 서술한 내용이다.
10년 가까이 지난 2016년 오늘날, 한국인의 아파트 집중도는 그때보다 더해졌다. 국토교통부가 2006년 이후 격년마다 진행하는 주거실태 조사결과를 보면, 주택유형 가운데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당시 41.8%에서 10년 가까이 지난 후 49.6%(2014년 기준)로 늘었다. 수도권만 보면 아파트 거주가 50.8%로 이미 두 가구 중 한 곳은 아파트에 산다. 특히 고소득층의 경우 4분의 3 이상이 아파트를 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파트는 단순히 주거유형의 한 형태로서만 바라볼 수 없게 됐다. 개인 혹은 한 가정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큰 자산이자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는 부동산상품, 나아가 현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습성을 규정하는 생활양식 등 접근방식은 각양각색이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부)는 "한국의 아파트를 관통하는 쟁점은 공공의 공간을 질적, 양적으로 축소시키고 사적공간을 기형적으로 과잉시켰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어느덧 등장한 아파트, 이제는 둘중 한 가구 거주= 아파트가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건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아파트의 초창기 역사를 되짚어보면 이 같은 점이 잘 드러난다.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로는 일제시대 서울 회현동에 들어선 미쿠니아파트나 충정로 토요다아파트·유림아파트, 혹은 그에 앞서 조선총독부 철도국의 합동관사 등이 이름을 오르내린다. 규모나 짓는 방식은 차이가 있지만 직원을 위한 관사나 사택 용도로 쓰기 위해 일본에서 넘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해방 이후 첫 아파트에 대한 의견도 분분한데 종암아파트, 행촌아파트, 중앙아파트 등이 있다. 학계에서 대체적으로 해방 이후 첫 아파트로 꼽는 종암아파트나 이후 1962년 준공된 마포아파트의 경우 당시 정권 차원에서 강력히 드라이브를 걸어 추진됐다. 아래로부터 혹은 불특정 다수의 필요에 의해 지어진 게 아니란 얘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마포아파트 준공식 당시 직접 참석해 "시대적 요청에 각광을 받고 건립된 본 아파트가 장차 입주민들의 낙원을 이룸으로써 혁명 한국의 한 상징이 되기를 빌어 마지 않으며(후략)"라고 강조했다.
1970년대 이후에도 정부 주도 아래 서구식 주거문화의 대명사로 아파트에 대한 선전ㆍ선동이 이어졌고 대규모 택지개발제도ㆍ아파트지구 등 정책이 잇따르면서 서민중산층이나 자산가에게도 아파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퍼졌다. 아울러 중동지역에 진출했던 건설사들이 저유가로 주춤하자 국내에서 아파트를 짓는 데 관심을 돌리면서 양적으로 늘었다.
박철수 교수는 "아파트가 전체 주택건설 총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단독주택을 앞선 게 1981년"이라며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를 거치면서 아파트라는 주택유형이 실제 살림을 어디서 꾸리고 있는가와 상관없이 누구나 선호하는 주택유형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한국 고유의 아파트단지 문화 변해야"= 아파트는 1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한국의 아파트 집중현상에 대해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갑작스레 고꾸라질 것으로 보긴 어렵다.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향후 거주하고 싶은 주택유형'에서 아파트는 48.1%(2014년 기준, 주상복합 포함)로 다른 유형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 거주가 아닌 투자수단으로 봤을 때도 거래의 용이성 등을 감안하면 경기변동에 따라 다소간의 변화는 있겠지만 아파트에 대한 반감이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당장 2~3년 후 시장에 공급될 주택을 가늠할 수 있는 주택 건설실적을 보면 올 들어 지난 4월 말까지 아파트는 15만4067가구로 전체 주택 가운데 58.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4년 말부터 아파트 분양시장이 호조를 보이면서 아파트는 다른 주택을 압도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아파트 건설은 45% 이상 늘었는데 비(非)아파트는 7.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잠재수요가 받쳐주는데다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대형 건설사가 앞다퉈 아파트 공급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결과다. 다만 주택보급률이 이미 100%를 넘어선데다 대도심의 경우 추가로 아파트를 지을 공간이 마땅치 않은 만큼 정부도 기존의 양적공급이 아닌 주거환경을 개선하거나 기존에 공급된 주택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3년 발표한 장기주택종합계획에 따르면 오는 2022년까지 연 평균 39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앞서 90년대 52만가구, 2003~2012년까지 48만가구에서 대폭 줄었다.
최근 공급되는 아파트 가운데 눈에 띄는 건 열린단지를 표방하거나 그간의 획일적인 디자인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아파트는 주로 단지를 폐쇄적으로 운영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아파트가 들어선 단지가 테두리를 치고, 단지 안과 밖을 나눠 사유화한 공간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공공공간에서 치안ㆍ방범과 같은 공적 서비스의 수준은 낮아졌다.
서울시가 정비사업으로 새로 들어서는 아파트에 대해 심의하는 과정에서 보행로를 확충하고 커뮤니티시설을 인근 주민과 공유하도록 권장하는 것도 이 같은 폐쇄성을 없애기 위해서다. 박 교수는 "단순히 아파트 단지를 개방하는 차원을 넘어 외부 공적인 공간에서의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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