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의 성찰/반성의 기회

어느 시골교회 목회자의 넋두리...

아진(서울) 2015. 2. 3. 06:15

삼십년된 시골교회
부임한지 십년이 지나도 사십명이 안되는 교회
도회지로 나간 성도가
남아있는 성도보다 더 많은 교회
일꾼이 없어 장로를 세울 수 없는 교회
노회에서는 미조직교회로
나는 언제나 임시목사로]
그렇게 세월만 죽이며 예배당 하나 다시 지었다.

교회 설립 삼십 주년 기념으로
이십 만원짜리 돼지 한 마리 잡아
동네 노인들 모시고 잔치하고 싶었으나
가난한 성도들 호주머니 생각에 그냥 넘어갔다
그 주간 교계신문에 서울 어느 교회는
교회설립 삼십 주년 기념예배 광고가
신문 반 장이나 차지했는데...

주님이 가라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다고 찾아온 시골교회
십 년이 지나도 전 주님 복음화는 고사하고
아직도 사십 명이 안 되는 성도
그 중에 절반은 예순이 넘었다
일 구역 성도 중에 가장 젊은이가
예순 일곱 표순덕 권찰님

겨우 겨우 전도해서
예수 믿고 주일 성수 십일조 하더니
도시로 나간다며 인사하는 젊은 부부
이사가는 곳 심방 가서
가까운 교회 친구목사에게 소개해 주고
먼길 운전해서 오던 그 날 밤
아내와 나는 울면서 돌아왔다

첫돌 지난 첫째를 안고
백일도 채 안된 둘째를 업고
갈 바를 모르고 찾아온 이곳에서
아이들은 자라서 어느 덧 초등하교 고학년이 되었다
믿음 없는 나는 아이들 교육 걱정하는데
도시의 친구들은 하기 좋은 말로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실 거야!" 위로를 한다

어쩌다 도시로 나간 성도가 고향교회를 찾아오면
반가운 마음에서 마주앉아 끓는 정을 억제하는데
그의 마음속에서 고향교회는 이미 사라지고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는
개척 몇 년에 성도가 수백명이라고 자랑을 한다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이 앞에
나는 그만 기가 죽는다

나도 부교역자 청빙 광고 한번 내 봤으면
장로도 세우고 위임식도 해봤으면
미자립교회 딱지 떼고
선교비도 구제비도 좀 많이 보내봤으면
그래 이왕이면 동창 목사들 초청해 놓고
지난날 신학교 시절 식권 얻어 시장기를 면했던
그 빚을 한 번 갚아 봤으면

아니
청년교사들이 있어서 주일하교 힘있게 하고
성가대도 임명해서 찬양 좀 하게 했으면
주일이면 온 동네 다니면서 노인들 좀 부축해 오고
하루종일 시끌벅적 교회 안이 요란했으면
일에 시달리고 삶에 지친 성도들이
언제나 기쁨으로 예배당에 오고싶어 했으면

강 건너편에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면 소재지에 개발바람이 불어도
그린벨트
군사보호구역
낙후된 시골동네
그래도 주님이 사랑하시는 영혼이 있어
누군가가 지켜야 할 시골교회

돈 있고 능력 있는 친구들이
신도시 길목 좋은 곳에서 보란듯이 버티고 있으니
돈 없고 능력 없는 나
그래서 떠날 수 없는 시골교회
"목사님 가시려거든 날 묻어주고 가시쇼예!"
물기 어린 눈 빛으로만 바라보는 성도들 때문에
그래서 더욱 떠날 수 없는 시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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