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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승!!!!

아진(서울) 2009. 12. 12. 08:15

[신일하의 연예 X파일] 방송가에 서번트 리더십 보여준 선 故 김주승

파이미디어 | 신일하 편집국장 | 입력 2009.12.11 15:49 | 수정 2009.12.11 18:07 | 누가 봤을까? 40대 남성, 경기

 

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 된 후 회원 협회비 면제

[TV리포트] "(김)주승이는 '극기복례'의 실천이 뭔지 보여준 협회 이사장이었어요. 하지만 한창 일할 나이에 먼저 갔으니 삶이 공허하다고나 할까--" 그의 눈은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묻고 있었다. 어려운 한자성어를 섞어 말했는데 혹시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 아닌 가 확인하고 싶어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가 또박또박 말해주어 필자는 쉽게 알아들었다.

"으악! 극기복례'(克己復禮)라. 과도한 욕망을 누르고 예를 좇음을 말하는 건 데--"하며 필자가 감탄하자 그는 그제야 대화 소통이 된 거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이처럼 의식을 지닌 연기자인데 왜 드라마에서 주연을 못하고 단역이나 하나. 그를 A로 칭하는 게 좋겠다. 방송가에 A만 단역 연기자는 아니다. 대하물 드라마에 겨우 얼굴을 비치며 생활하는 연기자가 많다. 외주제작 시스템이 시행되며 더욱 심해져 캐스팅은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빚고 있다.

"우리 협회 회원이 1천여 명이 되는데 70-80%는 나와 비슷한 입장이예요" 이것저것 살아가는 이야기 하다 협회(사단법인 한국방송연기자협회)일을 거론하게 되었고 A는 2007년 46살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난 스타 김주승을 떠올렸다. "주승이가 이사장일 때 몇 푼 안 되는 돈이지만 (전체 회원의) 협회비를 안 받았어요. 우리처럼 일 없는 연기자를 위해 배려해 준 거죠. 이사장이 되면 협회비를 징수하지 않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고 당선 된 거라 약속을 지킨 거예요" 김주승은 재임 2년(2003-2004)간 회원들의 협회비를 면제해 주는 대신 자신의 인맥을 동원, 찾아다니며 협찬 등으로 협회운영비 수억 원을 충당해야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경영하던 외주제작사의 실적도 부진해 부채가 많았던 김주승은 그로인해 정신적 고통이 커 죽음에 이르는 질병에 걸렸을지 모른다고도 했다. 그래서 고 김주승에 '극기복례'의 표현을 해줘도 손색없다고 말한 A는 "우리 단역들 애환을 드러내 봐야 누워 침 뱉는 거라 이쯤 해두자"고 했다. 생전에 김주승이 21세기 리더십인 서번트 리더십 실천에 앞장선 걸 몰랐던 필자가 뒤늦게 그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기억나는 일화가 있어서다.

2002년 가을 밤 STV 대하드라마 '
야인시대' 일산 야외 녹화장에서 김주승을 만났다.

"OOO님 잘 계셨어요. 그런데 우리 협회에 무적 스타들이 많다고 칼럼(연예가애드벌룬)에 공개하셨더군요. 낯 뜨거워 혼났어요" 필자의 칼럼을 보았다고 한 그는 "스타들 얼굴 들고 다닐 수 없게 만드셨으니 취재 힘드시죠"하는 게 아닌가. "그래? 난 반응을 감지하지 못했는데"하고 시치미를 떼었더니 "파장이 컸으니 밤길 조심하고 다니시라"고 능청 떨었다. 하긴 여파가 있었지만 당시 협회 회장이 커버 해주었다.

'
황수정,김남주,채림,한고은,명세빈,김효진,이민영,차인표,박광현,박상면,정웅인,감우성…' 협회가 KTV, MTV, STV 등 방송 3사 드라마에 나오는 연기자 113명이 협회에 가입조차 안하고 고정 출연하고 있다며 그해 여름에 명단 공개의 강수를 두었다. 3개 방송국 드라마 연습실 입구 벽에 리스트를 게시해 놓자 명단에 있던 톱스타급들은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었다. 협회 입회비는 방송국 공채 등 정규생 30만원, 비정규 60만원이고 월 회비 3,000원인데 그걸 안 내고 있다가 '무적 출연자'로 낙인(?) 찍히고 만 것이다.

그 명단 속에 김주승은 없었다. 평소 모범적 행동을 보여줘 PD는 물론이고 작가들 사이에서도 김주승은 평이 좋은 연기자라 협회비 미납 같은 결례(?)가 있을 리 만무다. 당시 만해도 협회는 조직력을 과시하는 기능을 했다. 비회원이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월 회비조차 부담이 되는 단역과 나이 든 연기자들이 많아 협회 운영에 여러 애로 사항이 있는 걸 알았던 김주승이라 그는 협회 이사장 선거에 출마하며 '회비 전액 면제'란 공약을 내걸었던 것이다. 회장에 당선 된 뒤 2년간 드라마 출연을 사양하고 개인 욕망도 포기하며 문자 그대로 '극기복례'의 실천을 보여준 김주승이었다고 설명한 A는 "그의 명복을 빌어주는 우리 협회 회원이 많아 저 세상에선 편하게 지낼 거다"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신일하 편집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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